"주식 넘겨라"…남양유업, 60년 만에 경영권 사모펀드에 넘어갔다

'불가리스 사태' 남양유업, 한앤코에 패소
각종 법정 분쟁 남아…정상화에 시간 걸릴 듯

정기홍 기자 승인 2024.01.04 20:38 | 최종 수정 2024.01.04 22:59 의견 0

지난 1964년 창업 이후 60년간 운영해온 남양유업의 경영권이 사모펀드에 넘어갔다.

남양유업 경영권을 둘러싼 오너 일가와 사모펀드(PEF) 한앤컴퍼니(한앤코) 간의 2년여의 법적 분쟁이 한앤코의 승리로 끝났다.

대법원 2부(주심 천대엽 대법관)는 4일 한앤코가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과 일가를 상대로 낸 주식양도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의 원고 승소 판결을 확정했다. 이에 따라 고(故) 홍두영 남양유업 창업주의 장남인 홍 회장은 한앤코에 경영권과 지분을 넘겨주게 됐다. 홍 씨 일가의 남양유업 지분은 52.63%다.

남양유업 로고

남양유업의 경영권 분쟁은 코로나19 당시 불가리스 제품의 '무리수 마케팅'이 계기가 됐다.

남양유업은 코로나19가 확산한 2021년 4월 '코로나 시대 항바이러스 식품개발' 심포지엄에서 자사의 제품 불가리스가 코로나19 억제 효과가 있다고 주장해 논란을 불렀다.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고발을 당하고 경찰의 본사 압수수색도 겪었다.

홍 회장은 '불가리스 사태'가 확산하자 책임을 지겠다며 같은해 5월 사퇴를 발표했고, 남양유업 보유 주식 전부를 주당 82만원으로 한앤코에 매각키로 했다. 이 과정에서 홍 회장 일가와 한앤코는 공교롭게 김앤장 법률사무소에 각각 법률자문을 의뢰했다.

하지만 홍 회장 일가가 계약을 파기하고 주식을 양도하지 않자 한앤코는 2021년 9월 주식양도 이행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홍 회장은 한앤코 측이 ‘임원진에 준하는 예우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으나 이행하지 않았고,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들이 계약 당시 자신과 한앤코 쌍방을 대리해 계약 자체가 무효라고 주장했다.

민법 등은 이해관계가 충돌할 수 있어 변호사가 당사자의 동의없이 계약 등에서 쌍방을 동시에 대리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1·2심은 한앤코 손을 들어주었고 대법원도 한앤코에 승소 결론을 내렸다.

다만 1·2심과 달리 김앤장 변호사들이 쌍방대리를 한 것은 맞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들이 쌍방에서 각자 사건을 수임했더라도 쌍방대리에 해당하고 이런 사건 수임은 원칙적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밝혔다.

김앤장 측은 해당 변호사들이 법률상 대리를 한 것이 아니라 자문만 했다고 주장했는데, 대법원은 법률상 대리를 한 것을 섣불리 부정할 게 아니라 변호사에게 주어진 역할, 권한, 재량 등을 종합적·구체적으로 살펴본 뒤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홍 회장이 당시 쌍방대리에 동의했다며 예외적으로 남양유업의 계약건은 유효하다고 결론내렸다.

이번 판결은 대법원이 변호사의 쌍방대리 문제에 대해 상세한 기준을 제시한 첫 판례다. 김앤장은 그동안 여러차례 쌍방대리 논란을 빚었다.

홍 창업주는 이번 대법원의 판결로 "아이들에게 우리 분유를 먹이겠다"며 남양 홍 씨의 본관을 따 설립한 남양유업은 60년 만에 PEF에 경영권을 넘기게 됐다.

남양유업은 발효유인 불가리스와 '맛있는 우유 GT', 믹스커피 '프렌치카페' 등 히트상품을 만들었으나 2010년 이후 각종 논란을 빚으면서 불매운동이 일며 입지가 좁아졌다.

남양유업은 2013년 대리점에 물품을 강매하고 대리점주에게 폭언한 사실 등이 알려지면서 불매운동이 일어 업계 3위로 밀려났다.

이 말고도 홍 회장의 경쟁업체 비방 댓글 지시 논란,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 씨의 마약 투약 사건 등으로도 사회적 물의를 빚었다.

한앤코는 남양유업 인수 절차를 마치고 경영 정상화에 주력할 방침이다.

다만 홍 회장과 한앤코 간 손해배상청구소송 등 법정 분쟁과 지분 정리 과정은 남아 있다. 경영 정상화까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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