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극복 '도전 문화' 재장착" vs "시대 역행 '워라붕'일뿐"...삼성 주 6일제

임지연 승인 2024.04.22 08:06 | 최종 수정 2024.04.22 10:00 의견 0

삼성그룹이 지난 20일부터 임원 대상 주 6일제 시행에 본격 돌입하면서 재계 안팎에서 엇갈린 반응이 불거지고 있다.

삼성전자 홈피 캡쳐


삼성이 전례 없는 '진짜 위기'에 처해 있는 만큼 구성원, 그 중에서도 경영진의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 견해가 적지 않다.

반면 주 5일제를 넘어 주 4일제로 가고 있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발상이자, 인공지능(AI)시대에 어울리지 않은 제조업 마인드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삼성이 차지하는 산업계 내 위상이나 파급력을 볼 때 다른 기업들도 동참할 가능성이 적지 않아 논란은 재계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삼성 임원 주 6일제: 삼성에서는 삼성전자 등 일부 계열사가 지난해부터 경영 위기 극복 차원에서 해 오던 임원들의 주 6일 근무가 지난 20일(토요일)을 기점으로 그룹으로 확산됐다.

최근까지 삼성전자 지원·개발 부서의 임원과 삼성중공업, 삼성E&A 등 설계·조달·시공(EPC)3사 임원만 주 6일 근무를 해왔다.

하지만 지난 20일부터 주요 계열사 임원들이 평일 근무 이후 토요일 또는 일요일 중 하루를 택해 자발적으로 출근하는 형식으로 주 6일제 근무에 들어갔다. 물론 일반 직원은 휴일 근무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긍정론: 일단 삼성그룹 내 부정적 기류는 많지 않다. 한 임원은 "전임 회장 시절부터 위기에 대한 선제적 대응을 강조한 '위기 경영'에 익숙한 측면도 있어, 주 6일 근무가 낯선 건 아니다"면서 "특히 최근의 급박한 경영 환경이나 우크라이나 전쟁, 이란-이스라엘 충돌 등 대외 불확실성을 고려하면 어느 때보다 위기 의식을 갖고 대처해야 하는 건 맞다"고 말했다.

재계도 수긍하는 여론이 적지 않다. 경영층이 앞장서 시간을 내어 더 고민하고 노력을 기울이지 않으면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큰 글로벌 경쟁 여건에서 이기기 어렵다는 현실론이다.

A그룹 고위 인사는 삼성이 위기에 직면한 건 사실이라며 갈수록 우리 사회가 근로시간을 줄이는 분위기임에도 삼성의 주 6일 근무는 "대단히 시의적절하고 꼭 필요한 조치"라고 평가했다.

그가 보기에, 삼성의 위기는 전자 주력 사업인 반도체 부문에서 지난해 15조원의 영업 손실을 기록했다는 사업 상의 위기가 아니라 조직 문화의 위기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2010년대 후반 사법 리스크로 인해 4~5년간 총수의 경영 공백이 생기면서, 대규모 투자나 제대로 된 M & A(인수 합병)이 없었고, 그러는 와중에 2018년부터 2020년까지 반도체 호황에 힘입어 수백조 원의 현금이 쌓이면서, 리스크를 두려워하지 않는 삼성 특유의 도전적 기업 문화가 많이 잦아들면서 진짜 위기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때문에 현재 반도체 파운드리(수탁생산) 넘버 원인 TSMC와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고, AI 반도체인 HBM에서는 하이닉스에 뒤쳐지는 등 위기 상황에서 삼성 특유의 혁신 DNA 문화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임원들이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경제 관련 연구소 출신 B씨도 주 6일제 근무에 찬성했다. 그는 "애플이나 아마존 등 미국의 잘 나가는 기업들의 임원들은 더 나은 성과를 내기 위해 평소에 6일이든, 7일이든 자연스럽게 회사에 나와 일하는 게 일상화되어 있다"며 "매일 매일 전쟁이 벌어지는 글로벌 비즈니스 환경에서 경영진의 근무가 주 5일제니 6일제니 하면서 정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라고 말했다.

그는 다만 국내에서 주 6일제를 시행하려면 주말에도 나와 근무하며 새로운 아이디어와 조직 발전 방안을 구상하고 제안하는 사람에 대해 제대로 보상해 주고, 실질적인 결과를 이끌어 내도록 유도하는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고 조언했다.

부정론 : 무엇보다 위기를 극복하는 방식이 시대 흐름과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크다.

가뜩이나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회원국 가운데 평균 근로 시간은 많지만, 생산성은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제조업 중심의 구시대적 마인드로 문제 해결 역량을 높일수 있겠느냐는 반문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제조업에서는 장시간 노동이 실제 성과로 연결되기도 했지만, 기술 혁신을 놓고 경쟁하는 첨단산업에서 단순히 업무시간을 늘린다고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이미 노동계 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주 5일제를 넘어 주 4일제 도입 이야기가 무성한 상황인 점을 들어 비록 임원들을 대상으로 한다고 하나 시계추를 거꾸로 돌리는 조치라는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은 지난 10일 치러진 총선 공약에서 주 4일제 도입 기업 지원 공약을 내걸었다. 금융권에서는 SBI저축은행이 지난 1일 업계 최초로 임금 삭감 없는 주 4일제를 시범 도입했다.

주 6일제 도입은 2010년대 이후 정착되어 가고 있는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워라붕(워라밸의 붕괴)'에 불과해 생산성을 더욱 떨어드릴 것이라는 지적까지 나온다.

특히 최근의 여론조사를 보면 Z세대 과반 이상은 연봉 감소에도 주 4일제 도입에 찬성할 정도로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에 필사적이다.

또다른 재계 관계자는 "직원 출근은 금지한다고 하지만, 임원이 나와서 볼 자료들을 만드는 작업을 평직원들이 주중에 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SK그룹은 지난 2월부터 수뇌부와 주요 계열사 최고경영자(CEO)이 토요일에 모여 현안을 논의하는 '토요 사장단 회의'를 20년 만에 부활시켰다. SK그룹의 토요일 회의는 2000년 7월 주 5일제 도입 이후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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