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노년③]"나는 99세 현역 간호사"...정년은 필요 없다

임지연 승인 2024.03.27 07:49 | 최종 수정 2024.03.30 19:05 의견 0

요즘 저출산 관련 뉴스가 하루에 대략 몇 건이나 쏟아지는지 수강생에게 과제를 주었더니, 무려 12회 이상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2023년 합계출산율(여성이 가임기간 낳을 것으로 기대되는 평균 출생아 수)이 역대 최저인 0.72명으로 집계될 정도로 출생률 급감에 따른 인구 절벽, 나아가 대한민국 소멸론까지 나오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반면 65세 이상 인구는 전체의 18.2%를 차지, 저출생과 함께 고령화 현상은 한층 심해지고 있다.

한국보다 한참 앞선 2005년 초고령 사회(65세 이상 인구 비율 20%)에 진입한 일본은 주지하다시피 노령인구 비율이 전세계에서 가장 높다(2022년 기준 29.1%).

시니어 취업 전성시대

일본 미에현 쓰시에 있는 고령자 시설 '이치시노사토’에서 99세 현역 간호사로 일하고 있는 이케다 기누씨는 “정년은 필요없다”고 말한다.

이케다 기누 씨. 1924년 생(다이쇼 13)이니 올해 백수(99세)다.

적십사 구호간호사 양성소에 진학, 꽃다운 열아홉이었던 1943년부터 간호사로 활동했으니 커리어가 무려 80년이다. 아들도 둘이 있다. 지금도 일본 미에현 쓰시에 있는 고령자 시설 '이치시노사토'에서 일하고 있어 현역 최고령 간호사로 칭송 받는다.

“이 곳에 취직했을 때는 88세였어요. 2~3년 마지막 일을 하고, 그만 두려는 생각으로 이곳에 왔는데 벌써 10년이 지났어요.”

이케다 씨는 “고령자시설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때는 주 4일 풀타임 일했지만, 최근에는 일손이 적은 주말 등에 몇 시간만 근무하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99세의 나이에 직접 주사를 놓으며 현역 간호사로 활동하는 이케다 씨.


이케다 씨가 일하고 있는 '이치시노사토'에는 직원 83명 중 3분의 1이 60대 이상이다. 70대, 80대의 직원들도 있다.

일본은 시니어 취업률도 역시 세계 최고다. 60대의 절반 이상이 현역으로 뛰고 있다. 60~64세의 70%, 65~69세의 50%가 일터를 지키고 있으니 '액티브 시니어'의 모습은 아주 자연스럽다.

사실 저출산에 따른 청년 인력 보충 차원에서 한 때 시니어들의 취업률이 증가했고, 이전에 이들에 대한 평가는 '찬밥 신세'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였다.

하지만 이제 '역량 있는 시니어 한 사람이라면 열 청년 안 부럽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귀중한 인적 자원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각이 잡힌 근무 자세, 단단한 직업 윤리, 수십년 동안 쌓아온 노하우 등은 젊은층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자산이라는 평가가 자리 잡으면서 시니어 고용이 사회적으로 화두가 되고 있다.

"I am Nojima"

대표적인 곳이 일본 요코하마에 본사를 두고 있는 가전양판업체 '노지마’다.

일본 요코하마에 본사가 있는 가전 양판업체 '노지마' 전경. 정년이 80세인 회사, 제조업체로부터 임시직원 파견 지원을 받지 않는 일본 내 유일한 판매 전문 회사이기도 하다. 홈피 캡쳐


이 회사는 4년전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직종에 관계없이 정년을 65세에서 80세로 15년 올리는 파격적인 정책을 단행했다.

제조업체가 지원하는 임시 매장 직원이 없는 유일한 <가전 판매 전문점>으로도 유명한 노지마는 또 80세가 넘어도 계속 일하고 싶다는 의사가 있고, 건강만 허락한다면 근무여건에 따라 계속 고용을 실시해 오고 있다.

“사외이사 최고령 99세”

2년전 <주간 다아이몬드>가 발표한 고령자 사외이사 톱 100인을 발표했는데, 전국 사외이사는 9,434명으로 60%가 65세 이상이었다.

90대에 현역 사외이사로서 활약하고 있는 사람이 무려 9명이나 있었다. 최고령은 99세였다.

<주간 동양경제>가 발표한, 고령자에게 인기 높은 재취업 직종은 회사 고문이었다. 수십년간 축척해 온 암묵지를 바탕으로 임직원들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각종 컨설팅 업무를 제공 하면서 존경과 인정을 받고 있어 '신의 직장'으로까지 일컫어지고 있다.

사실 고문직은 특정 업계의 인맥이나 기술, 기능 보유가 있을 때 가능하다.

2023년 한국의 미래에셋투자 연금센터에서 조사한 <퇴직 전에 미리 준비 못해 가장 후회가 되는 일> 가운데 30%가 인맥관리(시리즈② 과거를 맘껏 후회하라 참고)를 꼽은 것을 보니, 신의 직장을 얻기 위한 조건은 한국과 일본이 비슷한 것 같다. 물론 모든 게 같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의 60대 시니어들의 경우 일터에서 평균 얼마의 급여를 받고 있는 지 살펴보면 20, 30대 못지 않다.

일본 후생노동성 '2022년 임금구조기본통계조사'는 일하는 60대의 평균 급여를 보여준다. '60~64세'로 연 444.8만엔(한화 약 4,400여만원), '65~69세'로 연 360.2만엔(한화 약 3,600여만원)이었다.

이들이 선호하는 일터의 기준으로 삼는 조건은 직장에서의 일하기 쉬움이 40.1%로 가장 많았다. 일하는 장소 및 근무 시간이 30%로 그 다음이었다.

희망하는 직종은 '행정·공적 기관에서의 사무 보조(연 단위 고용)'가 65.2%로 가장 빙율이 높았다.

2020년 103세까지 현역 정신과의사로 활약한 베스트셀러 작가 타카하시 유키에 씨. 그는 자신의 책 <80세 이하의 젊은 사람에게의 메세지><살짝 무리해서, 살아 본다> 등에서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야. 제가 평소에 생각하는 것을 글로 정리한 것입니다. 일기를 쓰거나...”라고 말했다.


이처럼 시니어의 재발견으로 고용시장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문화가 바뀌고 있다. 따라서 ‘시니어가 더 잘할 수 있는 일과 환경’을 조성해 주고, 이들에게 다양한 혜택을 부여하는 제도의 마련이 필요하다고 본다.

첨언하면, 일본 시니어들에 비해 한국 시니어들은 더 액티브하고, 더 글로벌한 것 같다.

특히 지난해 한국시니어스타협회의 'k시니어 한류' 선포는 인상적이었다. 100세 시대를 맞이해 인생의 제 2막을 문화예술 분야에서 선도하겠다는 목표 아래 <제1회 K-시니어 뷰티 콘테스트>를 열고, 외모 뿐 아니라 품격과 교양, 도전정신을 기준으로 수상자를 선정, 문화강국 코리아를 전세계에 알리겠다고 나선 것이다.

글로벌 코리아를 지향하는 K시니어의 활동이 기대가 된다.

글:니시야마 치나(한국명 이명지)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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