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 이슈 ] 토큰 ‘증권’...미국은 어디까지가 증권?

게리 갠슬러 SEC 위원장 "암호화폐 거래소, 증권 판매하면서도 아닌 것처럼 가장"
"투자계약은 타인 노력으로 이익 기대 하면서 투자할 때 성립, 명칭은 중요치 않아"
"암호화폐시장, 규제 불명확이 아니라 미준수가 문제, SEC에 등록하고 증권법 준수해야"

임지연 승인 2023.05.23 17:37 | 최종 수정 2023.05.29 08:07 의견 0

미국에서 암호화폐가 투자계약증권이냐 아니냐의 여부는 증권성 판단 기준인 '호위 테스트(Howey Test)'로 판가름날 가능성이 높다. 1930년대 플로리다주 감귤 농장 주인 윌리엄 존 호위가 자신의 과수원(citrus grove)지분을 매각하면서 경작에 따른 미래 이윤을 투자자와 공유하기로 약속한 것이 발단이 됐다. 사진은 제주관광정보 포탈 'visit Jeju' 캡처


"(암호화폐) 거래소들은 ‘증권’을 판매하면서도 마치 다른 것(아닌 것)처럼 가장(pretending)하고 있다.”

게리 겐슬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위원장은 지난달 28일 자신의 트위터에서 이렇게 비난했다.

게리 갠슬러 미 SEC위원장이 4월 28일 자신의 트위터에서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규제를 지키지 않으면서 증권을 판매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트위터 캡처


그는 ”투자계약은 다른 사람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기대하면서 일반 기업에 돈을 투자할 때 성립한다. 모든 투자계약 중계자들은 증권법을 준수하고, 미 증권위원회(SEC)에 등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많은 암호화폐 거래 플랫폼들은 암호화폐가 투자계약과 다르다고 주장하고 있다"며 "그들이 암호화폐를 어떻게 부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법은 그것들이 실제로 무엇인지에만 관심을 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은 명확하다. 증권 거래소, 청산소, 브로커와 딜러들은 규정을 준수하고 당국에 등록하고,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암호화폐 시장은 규제가 명확하지 않아서 문제가 아니라, 규제를 지키지 않아서 문제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그는 "한 암호화폐 거래소 대표가 법을 너무 잘 알고 있어서, 암호화폐 발행자들에게 토큰이 투자계약에 해당될 수 있는 구체적 조항을 홈페이지에서 지우라고 권고 했다"며 "암호화폐 시장은 증권 규제를 준수하고 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어떤가. 이 정도면 미국 당국이 생각하는, 투자계약증권의 개념이 좀 잡히는가.

다른 사람의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을 기대하면서 투자했다면, 투자계약이고, 암호화폐 거래소들이 이를 뭐라고 부르든지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한다고 적극적인 판단을 내리고 있는 셈이다.

이익을 기대하지 않고 하는 투자행위가 과연 있을 수 있을까? 이쯤 되면 사실상 모든 경제 행위가 투자증권계약에 포함될 수 있어, 대다수의 암호화폐가 투자계약증권에 속한다고 볼 수도 있는 대목이다.

미 당국이 비트코인만 빼고 모든 가상자산을 투자계약증권으로 보고 있다는 말이 시장에서 나오는 것도 무리가 아닌 듯 하다.

물론 상황은 그리 간단치 않다. 호위테스트(Howey Test)라는 게 있다. 미국 SEC가 자산의 증권성, 다시 말해 투자계약증권 판별에 쓰는 전가의 보도 같은 기준으로, 이 기준에 부합해야 증권성 판별이 난다.

윌리엄 존 호위라는 사람이 1933년 플로리다주에 있는 자신의 시트러스 과수원(citrus grove)지분을 매각하면서 경작에 따른 미래 이윤을 투자자와 공유하기로 약속하자, 당시 SEC가 증권법 위반이라며 소송을 걸었다. 이 사안은 미 연방대법원이 1946년 투자계약에 해당한다는 판시하면서 마침내 종결됐지만, 호위 테스트라는 이름으로 증권성 판별의 시금석이 됐다.

이 기준은 4가지 원칙으로 구성돼 있는데, 모두 충족하면 증권법 규제를 받게 된다.

1)금전을 투자하고 2)수익을 기대하며 투자하고 3)공동사업에 투자하고 4)발기인 또는 제 3자의 노력에 의해 수익이 발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리 위원장이 다수의 암호자산이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한다고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것도 이 기준에 따른 것으로 봐야 한다. 이들 암호자산 개발자와 거래소 운영자들을 미등록 증권 판매 혐의로 조사하고, 사법 당국에 고발해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인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언뜻 보기에 증권성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송금 전용 암호화폐 리플과의 소송이 대표적이다.

사실 SEC 내부도 호위테스트에 의한 투자계약 증권 판별에 대해서 의견이 통일되어 있지는 않다고 한다.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데, 호위테스트 자체가 대공황이 한창이던 1930년대, 다시 말해 이미 90년 전의 기준이기 때문이다.

SEC 의원 중 한 사람인 헤스터 피어스는 호위테스트 자체가 한계가 있다고 주장한다. 당시 판결문을 뜯어보면 관리 및 이윤 배분에 관한 구체적 약속이 없었다면, 시트러스 농장의 지분은 증권이 아니듯, 암호자산 발행자가 구체적인 수익을 제시하지 않고 단지 네트워크 구축만을 약속 했다면 이것이 증권이 될 수 없다는 논리이다.

어쨌든 이런 논란에도 미국 당국이 호위테스트 적용을 쉽사리 포기할 것 같지는 않다.

아무리 오래된 기준이라고 해도, 비정형 권리를 토큰증권으로 발행할 때 권리를 증권법규 상의 투자계약에 해당하는 형태로 구조화하는 명확한 기준은 현재로서는 호위테스트뿐이기 때문이다.

갠슬러 위원장도 지난 90년 동안 증권거래법은 투자자들을 보호해 왔다“며 "이 법은 투자자들에게는 최고의 친구"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상황을 종합하면 미국 당국의 극적인 변화가 없는 한, 암호화폐들은 대부분 투자계약증권으로 판명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미국의 기준을 많이 참고하는 한국의 금융당국이라고 크게 다를까?

저작권자 ⓒ 사이렌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