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로 소극장 학전 이끈 '아침이슬' 김민기 씨 위암 투병 중 73세로 별세
정기홍
승인
2024.07.22 11:37
의견
0
자신의 히트곡 ‘상록수’처럼 30여 년간 작은 극장 '학전'을 지킨 김민기 씨가 암 투병 끝에 21일 73세를 일기로 눈을 감았다.
그는 1970년대 대표적 저항가요인 '아침 이슬'의 작사·작곡가이자 가수였다.
1951년 전북 익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회화과에 입학한 후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대표곡 '아침이슬', '꽃 피우는 아이' 등이 수록된 ‘김민기 1집’(1971년)은 고인의 데뷔음반이자 마지막 정규음반이다.
당대 20, 30대 젊은층에게 민중가요로서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나 이듬해 방송금지,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다. 직접 쓴 시적인 가사는 당시 번안곡 위주이던 우리나라 포크 음악계에 한 획을 그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활동에도 제재가 이어졌지만 ‘상록수’ ‘공장의 불빛’ 등 노래들을 꾸준히 발표했다.
공장과 탄광에서 1980년대를 보낸 그는 1990년대에는 공연 연출가로서 인생 2막을 열었다.
그는 1991년 3월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 대학로 공연문화의 상징이 된 소극장 '학전學田)'을 세웠다. 그는 이후 추수를 바라는 못자리로서 '배움의 밭'을 지켰다.
학전은 개관 초기엔 가수들의 콘서트장으로 활용됐다. 이후 '아이돌' 문화가 확산되면서 설 곳이 사라진 가수들에게 무대를 제공하며 오늘날 '인디밴드' 공연문화의 기틀을 만들었다.
시인과 촌장, 동물원, 유재하, 나윤선 등이 학전을 거쳐 갔고 고(故) 김광석은 1991∼1995년 매년 이곳에서 라이브 콘서트를 열었다. 극장 입구에는 김광석을 추모하는 '김광석 노래비'가 17년째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고인은 1994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을 초연하며 국내 창작뮤지컬 바람을 불러일으키기도 했다. 독일 극작가 폴커 루트비히의 ‘1호선’을 1990년대 말 한국 상황에 맞춰 각색해 2008년까지 4000회 공연해 70만 명 이상 관람했다. 고인은 이 작품으로 윤이상, 백남준에 이어 2007년 한국인으로서는 3번째로 독일 문화훈장인 괴테 메달을 수상했다. 그밖에 뮤지컬 ‘모스키토’, ‘의형제’, 연극 ‘복서와 소년’ 등을 제작했다.
1991년 개관 당시 임대료, 설비비 등 재원을 마련하려다 매일 병원 신세를 지고, 극장으로 진 빚을 갚기 위해 22년 만에 신보(1993년)를 내는 등 악착같이 버텼다. 그러나 다른 소극장과 마찬가지로 관객 감소 등 경영상 어려움이 이어지며 학전은 올해 3월 문을 연 지 꼭 33년 만에 폐관했다. 이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주도로 이달 17일 어린이청소년 중심 공연장으로 재개관했다.
고인은 위암 투병 중에도 마지막까지 ‘지하철 1호선’을 비롯해 어린이극 ‘고추장 떡볶이’ 등 공연을 올리는 데 매진했다.
동아연극상 작품상(1999년), 한국대중문화예술상, 은관문화훈장(이상 2018년), 호암문화재단 호암상 예술상(2020년) 등을 수상했다.
유족으로는 아내 이미영 씨, 장남 김종화 씨, 차남 김소윤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4일 오전 8시. 02-2072-2010
저작권자 ⓒ 사이렌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