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반도체 부문의 위기극복을 위해 초강수를 빼들었다.
삼성전자는 미래사업기획단장을 맡고 있던 전영현 부회장을 신임 반도체(DS)부문장으로 위촉했다고 21일 밝혔다. 미래사업기획단장에는 기존 DS부문장인 경계현 사장이 임명됐다.
인공지능(AI) 붐으로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고대역폭메모리(HBM)에서 경쟁사에 밀리는 등 이른바 '삼성 위기론'이 비등하자, 인사철도 아닌데 원포인트로 수장 교체카드를 뽑아든 것이다. 그만큼 안팎으로 느끼는 삼성의 위기감이 크다는 방증이다.
삼성전자는 "이번 인사는 불확실한 글로벌 경영 환경 하에서 대내외 분위기를 일신해 반도체의 미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라고 밝혔다
지난해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의 영업적자는 14조8,800억 원에 달했다. 경기사이클의 영향을 많이 받는 반도체 업황의 특성상 불가피한 측면이 있고, 올들어 확연히 개선 조짐을 보이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문제는 앞으로의 상황이 그리 녹록치 않다는 점이다.
미래 반도체 핵심 경쟁력으로 꼽히는 HBM 대응에서도 경쟁사에 한발 늦었고,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에서도 기대만큼 선두 추격의 속도를 내지 못하는 등 차세대 사업에서 주도권을 놓치고 있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최근 급부상한 HBM의 경우 엔비디아 납품이 경쟁력의 척도로 여겨지는데, 이 부분은 SK하이닉스가 4세대 HBM3을 독점 공급하고 있다. 초기 경쟁에서 선두자리를 빼앗긴 것이다.
이에 삼성전자는 5세대인 HBM3E의 조기 양산을 앞세워 역전을 노리고 있지만, 아직 엔비디아 샘플링 통과를 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함께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업계에서 글로벌 1위인 대만의 TSMC를 2030년까지 따라잡아 시스템반도체 1위로 도약하겠다고 이미 2019년 공식 선언했었다.
하지만 5년이 지난 현재까지 이렇다할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TSMC와의 시장 점유율 격차는 더 벌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위기 상황을 반전시킬 선봉장으로 위촉된 전영현 부회장은 기술통이면서, 마케팅 구원 투수로도 역량을 보여준 '삼성의 믿을 맨'이다.
그는 삼성전자 DS부문 메모리사업부장, 삼성SDI 대표이사 등을 거친 반도체 전문가이자, 맡은 사업마다 흑자전환에 성공한 이력을 갖고 있어, HBM 등 사업 주도권 탈환에 적임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 삼성전자 반도체 부분의 영업이익이 2012년 연간 4조원 대까지 추락했지만 전 부회장이 메모리 사업부장을 맡으면서 13조원 대까지 다시 회복했고, D램과 낸드플래시 모두 글로벌 1위 자리를 확고히 다졌다.
2017년에는 삼성SDI로 자리를 옮겨 5년간 대표이사 사장을 맡았을 때에도 휴대폰 배터리 발화 사건 등으로 연이은 적자에 허덕이던 회사를 부임 첫해 바로 흑자로 전환키고, 배터리 사업의 체질개선도 이뤄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전 부회장은 삼성 메모리와 배터리 사업을 글로벌 최고 수준으로 성장 시킨 주역”이라며 “그간 축적한 풍부한 경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반도체 위기를 극복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재계 관계자는 "지금 삼성의 위기는 단순히 반도체 사업만의 위기가 아니라, 지난 6~7년간 총수의 사법리스크를 겪으며 도전과 혁신의 기업 문화가 많이 흐트러진 때문"이라며 "이로 인해 HBM 등에서 밀리는 상황으로 나타난 만큼 삼성의 도전 문화를 되살리는게 시급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한편 경 사장은 최근 반도체 위기 극복의 계기를 마련한다는 차원에서 스스로 부문장자리에서 물러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DS부문장 때 쌓은 경험과 네트워크를 활용, 미래 먹거리 발굴에 주력하는 미래사업기획단을 총괄한다.
삼성전자는 내년 정기 주주총회와 이사회를 통해 전 부회장의 사내이사 및 대표이사 선임 절차를 밟을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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