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친족 간 재산 범죄 처벌 않는 형법 조항 '친족상도례'는 헌법에 위배"···국회, 내년 말까지 해당 조항 개정해야
재판관 전원일치 '헌법불합치'
다만 먼 친척 친고죄는 합헌
정기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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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27 22:49 | 최종 수정 2024.06.28 0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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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간의 사기, 횡령 등 재산 범죄를 저질러도 가족이라는 이유로 처벌하지 않는 형법상 ‘친족상도례(親族相盜例·친족 간의 재산 관련 범죄에 대한 특례)’ 조항(328조 2항)은 헌법에 어긋난다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나왔다.
1953년 9월 형법 제정 이후 71년 만에 판단을 바꾼 것이며, 또 헌재가 지난 2012년 이 조항에 대해 합헌 결정 내린 이후 12년 만의 판단 변경이다.
다만 '먼 친척'이 저지른 재산 범죄의 경우 고소가 있어야 기소할 수 있는 지금의 친족상도례 조항(328조 2항)은 합헌 결정을 내렸다. '먼 친척'이란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을 제외한 친족이다.
헌법재판소는 27일 친족상도례 조항인 형법 제328조 1항에 대해 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에 따라 국회는 내년 12월 31일까지 이 조항을 개정해야 하며 개정 전까지는 적용되지 않는다.
형법 제328조 1항은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의 재산 범죄에 대해서는 처벌을 하지 않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강도·손괴죄를 제외한 모든 재산 범죄가 대상이며, 현행법상 부모나 자식이 저질렀다면 처벌할 수 없다.
헌재는 이 조항이 범죄 당사자들의 구체적인 관계를 따지지 않고 형벌권을 면제해 피해자의 재판 진술권을 침해한다고 봤다.
헌재는 “재산범죄의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일정한 친족관계가 존재하면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어떠한 유대관계가 존재하는지 묻지도 않고 피해자의 가해자에 대한 처벌 의사 유무나 범죄행위와 그 피해 규모 등을 구체적으로 고려하지 않은 채 법관에게 형을 면제하는 판결을 선고토록 했다”고 지적했다.
또 “적용 대상 친족의 범위가 지나치게 넓다는 점에서 제도적 취지에 부합하지 않는 결과를 초래할 염려가 있다”고 했다.
다만 친족상도례 적용 범위에 포함되지 않는 친족이 재산범죄를 범한 경우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공소 제기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 형법 제328조 2항(친고죄 조항)에 대해서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범행을 알게 된 날로부터 6개월이 지나면 고소할 수 없다.
헌재는 이와 관련 “피해자의 고소를 제한하는 규정이 아니고 피해자의 의사에 관계없이 일률적으로 수사나 기소가 제한되는 것이 아니다”며 “고소의 의사표시가 어려운 경우의 보완 규정도 두고 있다”고 이유를 판시했다.
친족상도례 조항은 1953년 형법 제정 때부터 도입됐지만 이후 가족 간 재산 분쟁이 많아지고 유대관계가 약해지면서 의미가 퇴색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최근 방송인 박수홍 씨와 박세리 박세리희망재단 이사장이 가족의 재산범죄 의혹으로 소송을 제기하면서 국민 관심이 커졌다.
박 씨의 친형이 박 씨의 출연료와 기획사 자금 등 62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자 박 씨의 아버지는 검찰 조사에서 “(박 씨의 형이 횡령한) 재산을 내가 관리했다”며 친족상도례를 악용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박 이사장도 친족상도례 조항이 걸림돌이 되자 이 조항에서 적용되지 않는 사문서 위조 혐의로 아버지를 고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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