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배우' 안성기 씨가 중환자실 입원 6일 만에 팬들과 이별했다. 향년 74세.

고인은 음력으로 1950년 11월 28일 태어났으나 출생 신고를 늦게 해 호적상 1952년 1월 1일생으로 돼 있다. 지난 2023년 6월 28일 시행된 '만 나이 통일법'은 양력으로 통일했다.

5일 한국영화배우협회에 따르면 고인은 이날 오전 9시쯤 서울 용산구 순천향대병원 중환자실에서 치료 도중 가족 곁에서 세상을 떠났다.

배우 고 안성기 씨

그는 지난달 30일 자택에서 음식물이 목에 걸린 채 쓰러져 심정지 상태로 응급실로 이송됐다.

이후 중환자실에서 의식불명 상태로 치료를 받아오다 입원 6일 만에 별세했다.

고인의 소속사 아티스트컴퍼니는 "연기에 대한 깊은 사명감과 한결같은 성실함으로 대한민국 대중문화 역사와 함께해 온 분"이라며 "배우 이전에 한 사람으로서의 품격과 책임을 무엇보다 소중히 여긴 진정한 국민 배우였다"고 고인을 추모했다.

1952년 대구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고인은 지난 60여 년간 폭넓은 연기와 절제되고 반듯한 인품으로 사랑을 받아 왔다.

1957년 김기영 감독 영화 '황혼열차'에서 아역으로 데뷔했다. 영화 기획 일을 하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계몽영화인 ‘병사와 아가씨’(1977년)에서 조연을 맡은 뒤 본격 배우 생활을 했다.

이후 거지('고래사냥')에서부터 대통령('피아노 치는 대통령', '한반도')까지 주연과 조연을 가리지 않고 두루 연기했다.

길 위의 구도를 그린 ‘만다라’(1981년), '고래사냥'(1984년), '칠수와 만수'(1988년)', '개그맨'(1988년), '하얀 전쟁'(1992년), '투캅스'(1993년), '태백산맥'(1994년), ‘인정사정 볼것 없다’(1999년), 최초의 천만 영화인 '실미도'(2003년), '라디오 스타'(2006년), ‘화장’(2015년) 등 69년간 200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국민 배우로 불렸다.

국내 3대 영화 시상식인 청룡영화상·백상예술대상·대종상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모두 받았다.

정상급 유명 배우였지만 성실하고 절제된 생활로 스캔들 한 번 없었다. 신의와 예의를 철저히 지킨 것으로도 유명하다.

김대중 정부 때 문화관광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직 제의를 고사했고, 국회 비례의원직도 수 차례 제안을 받았으나 거절했다.

고인은 2019년 혈액암 진단을 받은 뒤 치료를 통해 이듬해 완치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추적 관찰 중 6개월 만에 재발해 투병 생활을 이어왔다.

고인은 2022년 9월 가발을 쓴 모습으로 ‘배창호 감독 데뷔 40주년 특별전’ 개막식에 참석해 "영화는 나의 모든 것"이라며 "다시 돌아오겠다"는 의지를 밝혔었다.

장례식은 (재)신영균예술문화재단과 (사)한국영화배우협회 주관으로 영화인장으로 치러진다.

유족은 아내 오소영 씨와 아들 안다빈·필립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오는 9일 오전 6시 엄수된다. 장지는 양평 별그리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