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게시판에만 공고 내고선···중앙선관위, 7년간 경력직 58명 부정채용

국가권익위, 채용비리 353건 적발, 312건 수사 의뢰

정기홍 기자 승인 2023.09.11 22:44 의견 0

중앙선거관리위원회와 전국 지방선거관리위가 최근 7년간 채용한 경력직 직원 384명 가운데 58명(15.1%)이 부정 채용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국민권익위원회는 선관위의 채용 비리 353건을 적발, 검찰에 28명을 고발하고 312건을 수사의뢰 했다. 수사에서 알려진 것처럼 선관위 간부들의 ‘가족·지인 채용’이 백일하에 드러날 지 주목된다.

정승윤 국민권익위원회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이 지난 6월 1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간부 자녀 채용비리 의혹 전수조사 착수를 밝히고 있다. 정 부위원장이 1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그동안 진행한 선관위 채용실태 전수조사 결과를 브리핑 하고 있다. 국민권익위

11일 권익위에 따르면 이들 중 31명은 정식 직원 채용 절차를 교묘히 활용했다.

이들은 1년 임기, 즉 임시직으로 먼저 채용된 뒤 시험을 거치지 않고 일반직 공무원으로 전환됐다. 특히 3명은 이른바 행정고시(5급 공채 시험)를 합격하면 임용되는 일반직 5급으로 전환됐었다.

임기제 공무원이 정년이 보장되는 일반직 공무원으로 전환되려면 서류·면접 시험을 포함한 경력 채용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직원 공고를 선관위 내부 게시판에만 살짝 올린 '꼼수 채용'의 경우도 있었다.

부정 채용자 중 3명은 선관위가 내부 게시판에만 올린 채용 공고로 각각 단독(한 명)으로 응시해 일반직 7~9급으로 채용됐다. 누가 봐도 선관위에 연이 없으면 알기 어려운 채용 방식이다.

이 중 한 명은 구청의 선거 업무 담당자의 아들이었고, 다른 1명은 구 단위 선관위 근무 경력자였다.

13명은 자격 요건에 미달하는데도 합격시켰다. 이들은 일반직 7~9급 또는 임기제 공무원 ‘라’급으로 채용됐다.

이 중 4명은 응시 자격이 ‘35세 이하’인데도 35세가 넘는 나이로 합격 했다.

또 8명은 경력 증명서를 부실하게 제출하거나 아예 제출하지 않았지만 합격했다.

선관위에 계약직으로 근무 중이던 한 명은 일반 임기제 9급 채용에서 ‘관련 근무 경력 1년 이상’ 요건을 채우지 못지만 인정을 받았다.

점수 조작도 있었다.

6급 일반직으로 채용된 한 명은 채용 과정에서 점수표가 조작된 정황이 발견됐다. 선관위에 임시직으로 근무 중이던 당사자는 일반직 채용 전형에서 한 항목 점수가 ‘15점’에서 ‘25점’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유 없이 억울하게 탈락한 응시자들도 있었다.

7급 상당인 ‘라’급 전문 임기제 직원 채용에서는 최종 3명이 합격돼야 했지만 2명만 합격했다. 또 6급 상당인 ‘다’급 전문 임기제 직원 채용에서는 최종 2명의 경력 수준 점수가 같았지만 선관위에 임기제로 근무 중인 지원자는 근거 없이 가점을 받아 합격했고, 선관위 경력이 없는 다른 한 명은 가점을 받지 못해 탈락했다.

권익위는 부정 합격한 58명이 전형 과정에 직접 관여했는지는 밝혀내지 못했다.

하지만 권익위는 58명 채용 업무를 맡았던 선관위 직원과 외부 심사위원 등 28명을 직권 남용과 업무 방해, 공문서 위조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299건의 채용 절차 위반도 적발됐다.

이 중 26건은 ‘경력직 채용 시 면접위원의 절반 이상을 선관위 직원이 아닌 사람으로 구성해야 한다’는 자체 규정을 어기고, 선관위 직원들끼리 면접위원을 겸해 채용을 진행했다.

사례로는 ‘관련 분야’ 실무 경력 1년 이상인 사람을 뽑는다는 자체 규정을 어기고 ‘선관위’ 실무 경력 1년 이상으로 자격 요건을 한정하거나, 채용 공고를 10일 이상 해야 한다는 자체 규정을 어기고 4일만 공고한 경우였다.

이 외에도 선관위의 인사 행정 부실도 확인됐다.

선관위가 지난 7년간 채용한 경력직 공무원 384명 가운데 181명은 경력 증빙 자료들을 검증하지 않고 채용됐다. 이 과정에서 중앙선관위는 국가공무원법상 해야 하는 인사 분야 자체 감사를 지난 7년간 한 차례도 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내부 행정 행위가 스톱된 '죽은 조직'이었다.

하지만 권익위는 선관위 내에서 직원 채용 부정이 정확히 얼마나 벌어지고 있는지를 밝혀내지 못했다. 권익위는 부정 채용 58명 외에도 비슷한 채용 사례가 더 있을 수 있다고 보았다.

권익위가 선관위에 ▲인사 시스템 접속 권한 ▲경력직 채용 합격자와 관련자의 인사 기록 카드 ▲채용 관련자 인사·발령 대장 등을 요구했으나 선관위는 어느 것도 제공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중앙선관위와 지방선관위 직원 약 3000명 가운데 41.1%만이 권익위 조사를 받기 위한 개인정보 제공 동의서를 제출했다고 덧붙였다.

권익위는 강제 조사권이 없어 선관위가 제출하지 않은 자료는 들여다볼 수 없어 부정 채용이 의심되는 58명과 이들을 합격시킨 채용 관련자들 간에 어떤 개인적인 관계가 있는지 확인하지 못했다.

중앙선관위 박찬진 사무총장(왼쪽), 송봉섭 사무차장. 이들은 자녀들의 특혜 채용 의혹을 받다가 지난 5월 25일 동반 사퇴했다. YTN 뉴스 캡처

한편 지난 5월 중앙선관위 사무총장과 부총장 등 선관위 직원들의 자녀 특혜 채용 의혹이 불거지자 중앙선관위는 언론에서 의혹이 제기된 4건만 자체 감사를 해 4명을 경찰에 수사 의뢰하고 4명은 자체 징계했다.

이에 대해 권익위와 감사원이 각각 선관위 조사와 감사를 하겠다고 밝히자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며 조사·감찰을 거부했다. 이어 강제 조사권이 없는 권익위 조사는 수용하고 강제 조사권이 있는 감사원 감사는 거부하겠다고 밝혔다가 여론이 악화되자 이번 사안에 한해 조사·감사를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권익위는 37명으로 전담 조사단을 구성해 조사를 진행했고, 감사원 감사는 진행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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