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뉴리더④] '극자외선 포토 레지스트' 국산화 SK하이닉스 길덕신 부사장

임지연 승인 2024.03.14 07:47 | 최종 수정 2024.03.14 10:00 의견 0

"포토 레지스트, 이게 뭔데 난리지?"

잠시 2019년으로 돌아가 기억을 되살려보자.

일본 정부가 우리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경제보복 조치로 그해 7월4일부터 반도체 관련 핵심 소재 수출 규제를 단행하자, 국내 반도체 업계엔 그야말로 비상이 걸렸다.

삼성 총수가 나서고, SK하이닉스 경영진이 총동원돼 일본 거래선 확보에 나서 급한 불은 껐지만 놀란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듣보잡 용어였던 '포토 레지스트'의 국산화 시급성을 온 국민이 알게 된 계기였다.

길덕신 SK하이닉스 부사장은 극자외선 감광액(EUV PR) 국산화를 계기로 소재 관련 리스크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 제공


감광액으로도 불리는 포토레지스트(photo resist, PR)는 반도체 원재료인 웨이퍼 표면에 회로 패턴을 그리는 필수 소재다.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반도체 칩을 만드는 공정은 웨이퍼 위에 회로를 새겨 칩을 만드는 전공정, 완성된 웨이퍼를 칩단위로 절단 분리해 패키징하는 후공정으로 나뉜다.

전공정을 세밀하게 들여다 보면 실리콘을 주원료로 기둥 형태인 잉곳을 만든 뒤 균일한 두께로 잘라 표면을 매끄럽게 가공하는 웨이퍼 공정, 산소 또는 수증기를 웨이퍼 표면에 뿌려 절연막 역할을 하는 산화막을 형성하는 산화 공정, 빛을 통해 웨이퍼에 회로를 형성하는 노광 공정을 거친다.

특히 노광 공정에서 고품질의 미세한 회로를 얻기 위해서는 웨이퍼 표면에 빛에 민감한 물질인 감광액을 얇고 균일하게 도포해 빛에 대한 감도를 높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한데, 이때 사용하는 감광성(感光性) 액상 수지가 바로 포토 레지스트다.

이것을 웨이퍼 표면에 바르고 포토마스크에 새겨진 패턴대로 빛을 쬐면 회로가 만들어진다. 흔히 빛의 종류에 따라 노광 기술이 나뉘는데, △불화크립톤(KrF·248nm) △불화아르곤(ArF·193nm) △극자외선(EUV·13.5nm) 등으로 갈수록 난도가 높아진다. 이 가운데 EUV PR(극자외선 포토 레지스트)은 극한의 난도를 자랑한다.

서두가 길었는데, SK하이닉스 길덕신 부사장이 올초 임원 인사에서 신설된 기반기술센터 산하 소재 개발 담당 수석 연구위원으로 발탁된 것도 EUV PR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서다.

그는 SK그룹 내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혁신을 이뤄낸 구성원들에게 수여하는 ‘SUPEX추구상’도 수상했다. 지난 2023년 100% 해외 수입에 의존하던 바로 'EUV PR'의 국산화 성공을 이끈 공로를 인정받은 덕분이었다.

“4~5년 전, 외산에만 의존해오던 소재를 공급받지 못해 한때 위기를 맞았지만, 회사가 발빠르게 대처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이 때의 성공으로 여러 신규 소재를 개발하는 데 큰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1999년 입사 후 ‘소재 혁신’이라는 한 우물을 파온 길 부사장은 13일 이 회사 뉴스룸과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신규 기술 개발을 통해 원가 경쟁력을 높이고, 소재 수급 관련 리스크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계획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안정적인 소재 생태계 구축으로 리스크 최소화에 기여

사실 최근 들어 반도체 소재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제품 개발 및 생산의 전 과정에서 기술 혁신의 핵심 역할을 하는 건 당연하고, 원가 경쟁력 확보 및 탄소 배출 저감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이다.

무엇보다 글로벌 공급망 전쟁의 한복판에 자리하고 있다. 최근 중국 반도체에 대한 수출 규제를 조이고 있는 미국이 글로벌 PR 시장의 90%를 점유하고 있는 일본에 대해 대중 PR수출 제한을 요구하는 상황을 봐도 알 수 있다.

길 부사장은 2021년부터 SK그룹 멤버사인 SK머티리얼즈 퍼포먼스와 협업해 반도체 공정 필수 소재인 EUV PR을 국산화하며 소재 수급 정상화에 기여했다.

길 부사장은 당시의 어려움을 반면교사로 삼아 ‘소재 리스크 관리 시스템(material Risk Index, mRI)’을 구축했다.

길덕신 SK하이닉스 부사장은 "선행 기술부터 양산 기술까지 소재 기반 통합 혁신을 이루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SK하이닉스 제공


모든 리스크에 대응하기 위해 소재별 위험도를 산출하고 별도 관리하는 시스템이다. 길 부사장은 협력사와 함께 ‘고위험 소재 대응 상생협의체’도 운영 중이다.

“반도체 소재는 기술 구현뿐만 아니라 장비 가동 등 양산 공정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입니다. 국제 정세와 규제 등을 잘 살피며 불확실성을 줄이고 안정적인 소재 운영 생태계를 구축해 가겠습니다.”

선행 기술부터 양산 기술까지 아울러, 소재 기반의 통합 혁신 이루는 것이 목표

“이번에 승진하면서 소재에 대한 경험과 역량을 인정받았다는 생각에 매우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 한편으로는 이 분야에서 더 큰 혁신을 이끌어내야 한다는 사명감에 어깨가 무겁기도 합니다. 앞으로 기반기술센터가 선행 기술과 양산 기술을 아울러 시너지를 내는 데 소재개발 담당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신규 소재를 지속적으로 개발해 나갈 계획입니다.”

길 부사장은 ‘소재 주도의 혁신’이라는 목표를 강조했다.

“과거 소재는 공정의 특성을 개선하는 보조적인 역할에 머물러왔습니다. 하지만 최근 소재의 혁신이 UPH(Unit Per Hour, 라인에서 1시간당 생산하는 제품의 수량) 개선 또는 공정 재정비를 통한 투자비 절감 등에 큰 기여를 하며 D램과 낸드 제품의 생산성과 원가 경쟁력을 높이는 데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소재 주도의 통합 혁신’을 이루는 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2024년 ‘소재 르네상스’ 원년 만들 것

길 부사장은 앞으로 반도체용 소재의 역할이 더욱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향후 소재가 성능 개선에 기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탄소 배출을 줄이며 인체에 무해한 특성을 지닌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라며 “이를 위해 새로운 대체 소재를 개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개선된 신규 소재를 실제 기술에 더 많이 적용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각 기술 단계에서 필요로 하는 것들을 명확히 파악해 실용적이면서도 차별화된 솔루션을 적용해 나갈 계획입니다. 우리의 역할이 점점 더 중요해지는 만큼 앞으로 ‘소재 개발의 르네상스’를 이루어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저작권자 ⓒ 사이렌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