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사는 것이 축복인가 재앙인가.
이런 질문 자체가 지난 수십년을 제외하고 인류 역사를 통틀어, 말 그대로 사치 중의 사치였다.
장수는 인류의 오랜 꿈이었고, 고대 이래로 오복 가운데 첫 손가락으로 꼽혔으며, 환갑(60세) 진갑(61세) 고희(70세) 희수(77세) 미수(88세) 백수(99세) 등으로 불리는 수연(壽宴)으로 기념할 정도로 큰 축복이었다.
신석기 시대의 기대수명이 20세, 역사시대에 진입한 철기시대에는 26세로 추정된다고 하니 어쩌면 당연했을 것이다.
사실 멀리 갈 것도 없다. 1900년까지도 인류의 기대수명은 31세에 불과했지만, 과학기술과 산업혁명(2차) 덕분에 20세기 들어 생산성이 비약적으로 늘면서 100년 사이에 68세가 됐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 기대수명은 평균 83.6세(여자 86.6세 남자는 80.6세)다. 요즘 문상을 하면서 느끼는 것이지만 “88세(미수)에 부모님이 떠나도 호상”이라고 말하는 집이 드물어졌다.
하지만 막상 100년 인생이 현실화 하면서 장수가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산다는 건,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시작”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렇게 오래 살아본 인류전체의 축적된 지혜의 경험이 없다 보니, 각자가 맞이하는 긴 노년은 그만큼 막막할 수 밖에 없게 됐다.
50년에 가까운, 자신에게 주어진 온전한 시간을 충만하고 행복하게 보낼 정서적 철학적 대비는 턱없이 부족하고 이를 물적으로 뒷받침할 금전적 준비 또한 미비하다.
그렇다고 열정과 에너지의 젊은 세대를 보완해줄 지혜와 덕을 갖춘 노년층을 우리사회가 예전처럼 공경하거나, 환대해 주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당장 공적 연금 제도 자체가 부실한 상황이다 보니 나이 들어가는 개개인의 삶은 다급해진다. "그때까지 어떻게 먹고 살아야 하나", "무슨 일을 새롭게 해야 하나"가 가장 큰 걱정거리가 되었다. 자식 대학 교육시키고 유학까지 보내면서 뒷바라지를 하느라 퇴직할 즈음에는 주머니가 텅 비어 있는 중산층이 부지기수이다.
어떻게든 한푼이라도 더 벌기 위해 은퇴를 늦춰보려고 발 버둥치는 게 소시민들의 삶이다. 거리에 나서 보면 70세, 심지어 80세가 되어도 택시 운전대를 잡은 노년을 보는 것은 흔하다. 나이 들어서도 평안한 삶을 즐기는 못하는 노령층이 그만큼 많아진 것이다.
“병원신세 지면서 산송장처럼 골골 백세로 살기는 싫다”, “자식이나 주변에 거추장 스러운 존재가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라는 말을 주변에서 접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극히 일부의 일이긴 하지만, 해외로 나가 안락사하는 일까지 생겼다.
이런 상황에서 “생명은 우주가 부여한 최고의 선물이고, 인간으로서의 삶만큼 귀한 축복이 없다”는 조언은 먹혀 들기 어렵다. 3시간 20분의 연극 대본을 거뜬히 외우는 89세 현역 배우, 대학 축제 무대에 나와 말춤을 추는 동안(童顔)의 91세 여성 총장, 신문에 칼럼을 쓰는 104세 철학자가 등장하고 있지만, 그런 인생을 사는 사람은 극히 소수임을 부인키 어렵다.
모두가 그런 활기찬 인생을 살수 있도록 하는 건 우리 사회와 국가의 가장 큰 존재 의무이자 과제일 것이다. 누구나 아름다운 노년을 살 권리가 있다는 생각을 제도화하고 이를 뒷받침하는 관행과 문화를 만들며, 과학기술의 탁월한 힘을 빌어 이를 더욱 풍성하게 가꿔나가야 할 것이다.
전문가들은 “각자가 품위 있고 아름답게 인생 후반전을 마무리할 수 있는 철학을 가다듬고, 건강을 지킬 수 있는 일상 생활을 영위하면서, 젊은 시절부터 자산관리에 충실한 삶을 준비토록 해야 아름다운 노년이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한국보다 먼저 초고령 사회(만 65세 이상의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 이상)에 진입했고, 이제는 전세계에서 가장 노년인구 비율이 높은 일본의 사례들을 탐색하면서 아름다운 노년을 위한 지혜를 구해보는 코너를 마련했다.
재일 교포 출신으로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경희대 이명지 교수가 일본 사회의 다양한 모습과 함께 '웰에이징(wellaging)'의 진면목을 매주 한차례씩 전해줄 것이다.
저작권자 ⓒ 사이렌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