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문재인 정부 때 더불어민주당이 국가정보원 대공 수사권(간첩 등 국가보안법 위반 범죄 수사) 폐지를 추진한 것과 관련 "이 법안으로 국정원이 간첩 관련자를 수사할 수 없게 됐다"며 대공 수사권 부활을 촉구했다.
한 대표는 14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주당이 결정해 통과시킨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 경찰 이관은 간첩 수사를 맡는 기관을 '교체'한 것이 아니라 간첩 수사 자체를 '포기'한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앞서 조선일보는 국정원이 지난 2022년 11월부터 민노총, 경남 창원, 제주 간첩단 등 '3대 간첩단' 사건 수사를 하면서 북한 연계 혐의자 100여 명을 포착하고도 수사를 진행하지 못하고 내사 대상자로만 분류돼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국정원 대공 수사권 폐지를 담은 개정 국정원법이 2020년 12월 13일 통과돼 올 1월 1일부터 시행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 당시 민주당은 국정원법 개정을 강행, 대공 수사권이 올해 1월부터 국정원에서 경찰로 모두 넘어가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안보수사국 산하에 안보수사단이 설치됐다.
하지만 국정원이 3대 간첩단 사건 내사 대상자로 분류한 인사들의 명단은 경찰에 제공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안보 전문가들은 “국정원으로서는 지금 경찰의 대공 수사력으로는 간첩단 수사를 감당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보안 유지도 안 될 것이라고 판단한 것 같다”고 했다.
한 대표는 이 언론 기사를 공유하며 "민주당은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을 폐지한 것에서 더 나아가 국정원의 조사권까지도 폐지하려 한다. 민주당이 왜 이랬고, 왜 이러는 것인지 묻고 싶다"고 짚었다.
그는 이어 "간첩 수사는 '수사의 영역'이라기보다 '정보의 영역'이며, 이런 이유로 그동안 경찰이나 검찰 같은 '일반 수사기관'이 아니라 국정원 같은 '정보기관'이 맡아 온 것"이라며 "그 노하우를 갑자기 이어받지 못한다"고 진단했다.
한 대표는 지난달 21일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 부활과 함께 현행 간첩죄 적용 범위를 '적국'에서 '외국'으로 바꾸는 간첩죄 개정을 당론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민주당은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 폐지 외에도 '대공 조사권'까지 폐지하겠다며 관련 법안을 발의한 상태다.
한 대표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우라늄 농축 시설을 공개한 것을 두고도 "과거 대북·대중 굴종 외교가 만들어낸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민주당은 북한 이야기만 나오면 평소와 달리 아주 과묵해진다"며 "곧 미국과 일본의 리더가 바뀐다. 우리 안보 상황도 변동성이 높아질 것이다. 정쟁과 방탄에만 몰두하지 말고, 북핵으로 위협당하는 대한민국을 지키자"고 제안했다.
한편 국정원의 3대 간첩단 사건 내사는 창원은 2016년, 제주·민노총은 2017년부터 시작됐다.
2020년 이들 사건 내사를 지휘했던 전직 국정원 간부 하동환 씨(당시 국정원 대공수사국 수사단장)는 조선일보에서 "민노총·창원·제주 간첩단 다 합쳐 북한과 연계된 혐의자가 약 100명에 달했다"며 "3개 간첩단과 잦은 통화를 하거나 접촉하는 등 북한에 포섭 대상으로 보고된 인물들인데 대공 수사권 폐지로 이들에 대한 내사는 진행되지 못했다"고 밝혔다.
하 씨에 따르면 당시 민노총·창원·제주 간첩단 사건으로 국정원 수사국 내사부에 등재된 인원은 각각 15명, 40명, 45명이었다. 하지만 실제 검찰이 기소했던 인원은 민노총·창원·제주 간첩단에서 각각 4명, 4명, 3명으로 11명이었다.
하 씨는 "세 간첩단 모두 국내에서 5년 이상 암약했다. 최소 2~3년의 내사 기간만 줬더라면 충분한 증거를 확보해 각 간첩단 조직 실체를 규명했을 것"이라고 아쉬워 했다.
현재 재판 중인 민노총·창원·제주 간첩단 사건의 피고인들은 베트남, 캄보디아 등 해외에서 북한 공작원과 접선했다. 또 '사이버 드보크'(이메일 계정 ID와 비밀번호를 공유해 교신)나 '스테가노그라피'(기밀 정보를 이미지 파일이나 MP3 파일 등에 암호화해 숨기는 기술) 등 고도화된 암호 프로그램을 통신 수단으로 활용해 교신했다.
대공 전문가들은 "간첩 수사를 제대로 하려면 국내 내사와 수사, 해외 내사, 과학 수사, 북한 정보 등이 종합적으로 결합해야 한다"며 "경찰이 국정원 수준에 도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하 씨는 이에 대해 "국정원의 대공 수사권 복원이 어렵다면 미국의 FBI처럼 별도의 간첩 수사 전담 기관을 창설하는 것이 바람직한 대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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