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영등포경찰서 소속 백해룡 경정이 제기한 ‘세관 마약 수사 외압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동부지검 검경 합동수사단(합수단)이 “세관 공무원들이 말레이시아 조직의 마약 밀수를 돕거나 경찰·관세청 지휘부가 백 경정의 수사에 외압을 행사한 사실이 없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10일 서울동부지검에 따르면, 동부지검 검경 합동수사단은 전날 “마약 밀수범의 허위 진술로 시작된 마약 밀수 수사 외압 의혹은 결국 사실무근이었다”고 밝혔다. 애초부터 마약 밀수에 세관이 연루됐다는 이 사건 의혹은 사실무근이었다는 것이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이 사건과 관련해 10월 12일 서울동부지검의 '세관 마약 수사 외압 의혹' 수사에 의혹 제기 당사자인 백 경정을 파견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사실이 아니라는 말이 많이 나왔던 때라 이 지시가 이례적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백해룡 전 서울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경정)이 지난달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대검찰청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국회방송

검경 합수단은 운반책들의 주거지와 사무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서울경찰청, 인천세관 등 30개 장소를 압수수색하고 46대의 휴대전화를 포렌식했으나 경찰청·관세청 지휘부가 대통령실 관계자와 연락한 내역 자체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경찰 지휘부가 백 경정에게 브리핑을 연기하라고 지시했던 것은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부분에 대해 공보에 신중을 기하라고 요구한 적법한 업무 지시였을 뿐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따라 백 경정이 이 사건 수사 과정에서 외압을 행사했다고 주장한 조지호 경찰청장(당시 서울경찰청장)과 조병노 전 서울청 생활안전부장, 김찬수 전 영등포서장 등 경찰 간부 8명도 혐의를 벗었다.

수사 당국 등에 따르면 백 경정은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이었던 2023년 마약 밀수 사건을 수사하다가 말레이시아인 운반책 3명에게서 "인천공항 세관 공무원들이 마약 밀수 과정에서 도움을 줬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이후 그는 세관 공무원 등으로 수사를 확대하다가 윤석열 정부의 대통령실·검찰·경찰의 외압을 받았고 서울 강서경찰서 지구대장으로 좌천당했다고 주장해 왔다.

최근에는 윤 전 대통령 부부가 내란 자금을 마련하려고 ‘마약 수입 사업’을 했다고 주장했다.

검찰 조사 결과, 말레이시아 운반책들은 2023년 9월 경찰의 인천공항 현장 검증에서 말레이시아어로 “허위 진술을 하자”고 말을 맞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조사 현장에 말레이시아인 운반책 한 명이 중국어 통역인만 있다는 점을 악용해 경찰이 알아들을 수 없는 말레이시아어로 공범에게 “그냥 연기해. 솔직하게 말하지 말고 나 따라서 이쪽으로 나갔다고 해”라고 요구했다.

검경 합수단은 “경찰은 밀수범들의 허위 진술을 믿고 이에 근거해 세관 직원들의 가담 여부 수사에 착수했다”고 했다.

운반책들이 경찰에 “세관의 도움을 받은 적이 없다”고 진술을 번복했으나 경찰이 이를 무마했던 정황도 나타났다.

검경 합수단은 또 운반책들이 지난해 3월 “세관 직원이 밀수를 도왔다고 허위로 진술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확보해 조사했다.

이 편지에는 “경찰 조사에서 세관 관련해 기억이 안 난다고 말을 했는데 경찰관이 이미 진술한 내용이 있어 진술을 바꿀 수 없다고 해 세관 직원들이 연루돼 있다고 진술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운반책들은 애초 경찰 조사에서 “마약 밀수 당시 (세관이 아닌) 농림축산식품부의 검역대를 통과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경찰이 “거긴 의미가 없다”고 하자 “세관 검색대를 통과했다”고 진술을 바꾸기도 했다.

운반책들은 합수단 조사 과정에서도 “세관 직원이 밀수를 도운 적 없다”며 “경찰이 계속 세관 직원을 지목하라고 해 아무나 지목했다”고 진술했다.

결국 의혹의 증거가 마약 밀수 운반책들의 진술이 전부였고 그 진술도 경찰 조사 과정에서 바뀌었는데도 경찰은 수사 대상을 마약 밀수 조직에서 세관 직원들로 전환됐던 것이다.

검경 합수단은 경찰청·관세청 지휘부가 백 경정의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것에 대해서도 "대통령실의 개입이나 관련자들의 외압이 확인되지 않아 관련자 모두 '혐의 없음' 처분을 내렸다"고 밝혔다.

이는 세관 직원들이 마약 밀수를 도왔다는 사실 자체가 허위 진술로 인정되지 않기에 경찰과 관세청 지휘부가 백 경정의 영등포서 수사팀에 외압을 행사할 동기나 필요성이 없었다는 것이다.

당시 대통령실의 개입 정황도 확인되지 않았다.

검경 합수단은 “객관적인 사실과 다른 경찰관의 느낌과 추측, 의혹 제기나 추측성 보도로 사건 관계인들의 명예훼손 등 피해가 상당히 증폭돼 수사가 종결된 일부 범죄사실 수사결과를 우선 발표했다”며 “대통령실 및 김건희 일가의 마약 밀수 의혹과 검찰의 수사 무마·은폐 의혹에 대해서는 수사를 계속 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백 경정은 검경 합수단의 중간 수사 결과 발표 직후 인천공항세관·김해세관·서울본부세관과 대검찰청·서울중앙지검·인천지검 등 6곳을 대상으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다.

백 경정은 영장이 반려되면 공개수사를 검토하겠다고 했다.

또 백 경정은 임지연 서울동부지검장을 겨냥해 “검찰 게이트와 한편”이라며 “합수단도 수사 대상이 될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백 경정은 지난 10월 중순 동부지검 수사팀에 합류한 뒤 검경 합동수사팀을 "불법 단체"라며 해체를 요구했고, 동부지검이 백 경정을 팀장으로 하는 5명 규모의 수사팀을 만들어주자 "인원을 더 달라", "영등포경찰서 수사 기록을 보게 해달라"는 등 또 다른 요구를 했다.

하지만 동부지검은 백 경정이 수사 외압 의혹을 제기하고 고발까지 한 상태여서 당사자 사건을 맡은 영등포경찰서·서울남부지검은 제외하고 인천지검의 말레이시아 조직원 마약 밀수 사건 은폐 의혹 등에만 수사하라고 했다.

검경 합수단은 지난 6월부터 가동돼 온 검경 합동수사팀과 합수단에 합류한 백 경정 주도 별도 수사팀으로 운영돼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