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투신 고교생 구한 뒤 라면 끓여주며 인생공부 시킨 '한강 어부'
정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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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6.17 00:38 | 최종 수정 2023.06.17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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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에 투신한 고등학생을 구한 뒤 라면을 끓어주면서 삶의 가치를 전해준 어민에게 칭송이 자자하다.
16일 경찰과 경기 고양시 행주어촌계에 따르면 행주어촌계 어민 김홍석(65) 씨는 아침 5시쯤 한강에서 뱀장어 조업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 스티로폼 부표를 붙잡고 있던 고등학생 A군을 구했다. A 군은 전날 밤 10시쯤 가양대교에서 뛰어내렸고 경찰이 “사람이 물에 빠졌다”는 신고를 받고 수색했으나 발견하지 못했다.
A 군은 강물을 따라 1.5㎞쯤 떠내려가다 고양시 덕양구 한강 하류에서 어민이 쳐놓은 그물에 걸렸고, 스티로폼 부표를 붙잡고 밤새 버티고 있었다.
A 군은 아침 일찍 일을 나온 행주어촌계 어민 김홍석(65)에게 발견돼 오전 5시쯤 구조됐다.
김 씨는 뱀장어 조업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부표에 무언가 걸려있는 것을 보고 ‘혹시 사람인가’ 싶어서 어선을 타고 접근해 부표를 끌어안고 있던 A 군을 발견했다.
김 씨는 자신보다 덩치가 큰 A 군을 간신히 끌어올려 배에 태웠다.
A 군은 밤새 차가운 강물에서 사투를 벌인 탓에 얼굴은 창백했고 몸을 벌벌 떠는 등 저체온증을 보였다. 어깨와 허리 등에 시커먼 멍도 든 상태였다.
김 씨는 아내와 함께 A 군을 작업장으로 데려가 새 옷으로 갈아입히고 체온이 오르도록 화목난로를 피웠다. 따뜻한 커피를 건네고 라면도 2개를 끓여 먹였다.
김 씨의 보살핌에 기력을 찾은 A 군은 자신이 한강에 투신한 사정을 털어놨다.
부모님은 이혼 후 모두 연락이 닿지 않고 있고 현재 머물고 있는 청소년 쉼터에서도 적응이 어려워 극단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김 씨 부부는 오전 6시 30쯤 도착한 경찰과 소방당국에 A 군을 인계했다.
김 씨의 아내는 “차비에 보태라”며 주머니에서 있던 만원짜리 2장을 건네줬고 A 군은 눈물을 쏟으며 감사 인사를 했다.
김 씨는 “평소 6시쯤 조업을 나가는데 오늘은 잠이 안 와서 새벽 3시쯤 나갔다. 덕분에 A 군을 일찍 발견할 수 있었다”며 '학생이 천운을 받은 것 같다"고 말했다.
20년간 이곳에서 어업을 하고 있는 김 씨는 행주어촌계 어민이자 한국해양구조협회 행주구조대 대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 씨는 1년에 많으면 5구의 변사체를 목격한다고 전했다.
김 씨는 “살아있는 사람을 구조한 건 처음”이라며 “A 군이 투신 후 살아있는 건 기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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