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로 여는 한 주⑥] '만남'-체스와프 미워시(2)

임지연 승인 2024.03.31 12:44 | 최종 수정 2024.03.31 22:34 의견 0

만남

20세기 폴란드 최고 시인으로 꼽히는 체스와프 미워시. 그의 시는 쉽게 읽히면서도 생의 이면을 꿰뚫어보는 깊은 통찰로 번득인다.

체스와프 미워시 (Czesław Miłosz, 1911~2004)

(폴란드어 원문)

Spotkanie

Jechaliśmy przed świtem po zamarzłych polach,
Czerwone skrzydło wstawało, jeszcze noc.

I zając przebiegł nagle tuż przed nami,
A jeden z nas pokazał go ręką.

To było dawno. Dzisiaj już nie zyją
Ni zając, ani ten, co go wskazywał.

Miłości moja, gdzież są, dokąd idą
Błysk ręki, linia biegu, szelest grud -
Nie z żalu pytam, ale z zamyślenia.

(한글 옮김 서린)

만남

해가 뜨기 전 우리는 얼어붙은 벌판을 마차로 달리고 있었다.

아직은 어두운 밤, 붉은 날개가 드러났다.

갑자기 토끼 한 마리가 우리 앞을 깡충 뛰어 스쳐갔고

우리 중 하나가 손으로 토끼를 가리켰다.

그건 오래 전의 일이다. 오늘 그들은 살아있지 않다.

토끼도, 그를 가리킨 사람도.

내 사랑, 그들은 어디에 있는가, 어디로 가는가.

찰나인 손짓, 토끼가 달아난 방향, 조약돌의 달그락거림.

서운해서 묻는게 아니다. 경이로워서.

해설: 서린

체스와프 미워시는 서린 씨에게 특별하다. 30년 가까이 미국에서 지내다가 미워시의 시를 접하면서 새로운 세계에 눈뜨게 됐고, 폴란드로 건너가 시를 공부하고 한국으로 돌아와 연구를 계속하면서, 시의 힘을 체험하게 해준 은인이기 때문이다.

토끼와 그를 가리킨 사람이 살고 있지 않다는 게 시인에게 경이로운 사실이다.

토끼와 그를 가리킨 사람이 살았었다는 사실이 놀랍고 신기해서.

죽음은 삶의 윤곽을 드러낸다. 지금, 여기, 찰나인 삶이 종지부 없이 빛나도록

체스와프 미워시 (1911~2004)

“저자나 독자 서로가 숭고한 고통에 시달리지 않으며 소통할 수 있게 해주는 그런 형식”의 작품을 쓰고자 했던 폴란드 시인.

신학과 철학, 열망과 절망, 문명과 멸망, 국가와 시민, 그리고 개인적인 고통조차 포괄해 만물을 담을 수 있는 큼직한, 널따란 공간의 시를 갈망했다.

1911년 현재의 리투아니아 셰테이녜에서 출생하여, 빌뉴스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고, 폴란드의 반유대 국가주의를 비판하는 시집 『얼어붙은 신간의 서사시』로 등단했다. 두번째 시집 『세 번의 겨울』을 출간하며, 폴란드 최고 시인으로 추앙받는 아담 미츠키에비치(Adam Mickiewicz)와 비견됐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바르샤바에 거주하며, 지하저항운동에 가담했고, 나치를 피해 나온 유대인들을 보호하고 지원했다. 1945년 해방과 함께 공산주의가 된 폴란드에서 외교관으로 활동했다. 1951년 정치적인 이유로 프랑스로 망명했고, 1960년 가족과 미국으로 건너갔다.

시집 『시에 관한 논문』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시집 외에 에세이모음집 『사로잡힌 영혼』, 소설 『이싸의 계곡』 등을 발간했으며, 1980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2004년 폴란드 크라쿠프 자택에서 93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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