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색 유도선을 따라가세요"

운전자가 차량 내비게이션을 켜고 운전을 하다 교차로나 나들목, 분기점에 접근하면 나오는 음성이다. 차선이 갈라지는 차로가 한 방향일 때는 분홍색, 두 방향일 때는 초록색 선이 나타난다. 운전자는 이 선을 따라가면 된다.

서울역 앞 도로 교차로에 색깔 유도선이 보인다. 서울시

지난 2020년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한 윤석덕 씨.

이 노변 색깔 유도선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도로공사 직원인 윤석덕 씨다.

윤 씨가 경기 군포지사에 근무할 때인 2011년 3월 서해안고속도로 안산분기점에서 교통사고가 났다.

당시 달리던 승용차와 화물차가 서로 급히 차선을 변경하려다 크로스 출동을 해 사망자가 나오자 군포지사는 대책 마련에 나섰다. 직원들도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짜는데 골몰했다.

윤 씨는 당시 집에서 자녀들이 물감과 크레파스로 그림을 그리고 노는 것들을 보고 ‘도로에 색칠을 하자’는 생각을 했고 사내 아이디어 발표에서 이를 제안했다.

그러나 현실과는 동떨어진 제안이었다.

당시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흰색, 노란색, 하늘색, 적색 외에 다른 색깔을 도로에 칠하는 것은 불법이었다.

도로공사 본사는 "관련 법 위반"이라며 윤 씨의 제안을 거부했고, 경찰청도 같은 우려를 제기했다.

이때 윤 씨의 아이디어에 관심을 갖고 적극 도운 사람은 인천경찰청(당시 인천지방경찰청) 11지구대에 근무하던 임용훈 경감이었다.

임 경감은 교통제한 협의, 적극행정 면책제 등을 활용해 색깔 유도선 현실화를 도왔다.

임 경감의 적극적인 협조로 이 아이디어는 2011년 5월 3일 전국에서 처음으로 사고가 났던 안산분기점에 적용됐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연평균 25건이 발생했던 이곳의 교통사고는 색깔 유도선 적용 후 6개월 동안 단 3건에 그쳤다.

이에 관계 기관들도 공식적으로 도입 움직임을 보였다.

그제서야 도로공사 본사는 윤 씨 제안을 받아들여 2012년 6월 관련 내부 지침을 만들었다.

윤 씨의 제안 내용에다 설치 기준을 지속 개선했고 모든 고속도로 분기점 등 전국의 도로에 색깔 유도선을 확대 도입했다.

국토교통부도 2017년 12월 ‘노면 색깔유도선 설치 및 관리 매뉴얼’을 만들고 표준화된 색깔 유도선의 전국 도입을 지원했다.

또 내비게이션과 도로표지판에도 색깔 유도선을 도입했다.

문제는 국회의 관련법 개정이었다. 무척 더뎠다.

국회는 색깔 유도선이 언론의 조명을 받고, 윤 씨가 2020년 방송 교양 프로그램에 출연하자 움직였다. 2021년 5월 도로교통법이 개정되고 시행규칙이 바뀌어 색깔 유도선이 합법화 됐다.

윤 씨가 관련 정책을 제안한 지 10년 만이다.

색깔 유도선은 1000여 개 고속(화)도로와 일반국도, 지방도로 등 사고 위험이 많은 구간에도 확대 적용됐다.

효과는 놀랄 정도였다.

설치 구간 교통사고가 80% 이상 줄었다. 운전자 혼란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윤 씨가 300명 국회의원보다 나았다는 칭찬이 자자했다.

윤 씨는 2024년에야 행정안전부의 정부혁신유공자에 선정돼 국민훈장 모란장을 받았다. 13년 만이다.

윤석덕 씨(한국도로공사 차장)가 경기 이천시 호법분기점에서 대전 쪽으로 안내하는 노면 색깔 유도선을 가리키고 있다. 한국도로공사

윤석덕 씨(한국도로공사 차장)는 서울 종로구 보신각에서 2026년 병오년 새해를 알리는 '제야의 종'을 울린 시민영웅 11명 중의 한 명으로 참석했다.

윤 씨는 전국 3500만(운전면허소지자 기준) 운전자의 길잡이 역할을 하는 '색깔 유도선'을 도입한 자격으로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