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팀이 지난달 상온·상압에서 ‘꿈의 물질’로 불리는 ‘초전도체’를 개발했다고 발표한 이후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지금까지는 '극저온·초고압' 상태에서만 가능했다. "사실이면 노벨상감"이라는 인식에 증시에서는 벌써 초전도체 테마주 광풍이 불었다.
이석배 퀀텀에너지연구소 대표와 교신저자인 권영완 고려대 연구교수, 오근호 한양대 명예교수, 김현탁 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 박사 등이 참여한 한국 연구팀은 지난 7월 22일 논문 사전공개 사이트인 ‘아카이브(arXiv)’를 통해 상온·상압에서 초전도성을 갖는 물질인 ‘LK-99’를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고 공개했다. 논문 제목은 ‘The First Room-Temperature Ambient-Pressure Superconductor’(최초의 상온·상압 초전도체)다.
이에 미국, 중국의 일부 연구팀이 이 연구를 뒷받침하는 결과를 내놓았지만 한국초전도저온학회 등 국내 학계에서는 부정적 평가를 내놓고 있다.
이 논문은 납과 인회석 결정 구조인 ‘LK-99’를 통해 초전도 현상이 일어나는 임계온도가 섭씨 127도(400K)까지 가능하다는 내용이 담겼다. 권 연구교수는 “우리가 개발한 물질은 초전도체의 특성인 전기저항이 섭씨 30도, 1기압 상태에서 0에 가깝고, 약하지만 자석을 밀어내는 반자성(反磁性) 현상도 일부 보인다”고 설명했다.
예컨대 영하 180도 이하에서 생성되는 초전도체는 실용화에 한계가 있지만 30도 상온에서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초전도체는 전류가 특정 온도 이하에서 저항 없이 흐를 수 있게 하는 물질이다. 자기부상열차, 초고속 컴퓨터, 에너지 손실 없는 전력선 개발 등에 쓰인다. 핵융합, 양자컴퓨터, 자기공명영상(MRI), 가속기 등에도 활용된다.
초전도체가 발견된 것은 100여 년전인 1911년 네덜란드 라이덴 대학의 물리학자 카멜린 온네스가 수은의 전기저항을 측정하는 실험을 하다가 절대온도 4.2K(섭씨 영하 268.8도)에서 전기저항이 갑자기 없어지는 현상을 발견하고, 이를 ‘초전도현상’이라고 표현했다.
초전도체는 지금까지 '극저온·초고압' 등 제한된 환경에서만 구현할 수 있었으나 이번 논문은 '상온·상압'에서도 가능하다는 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이 개발이 사실이면 노벨상 수상은 물론 산업 현장에서 엄청난 혁명을 불러올 것으로 기대된다. 상온·상압에서 초전도체가 만들어지면 전력 전송에 드는 막대한 에너지가 필요 없어지고, 반자성 효과를 이용한 자기부상열차 등 교통수단에도 혁명이 일어나는 등 경제적 파급효과는 상상을 초월한다.
미국과 중국의 일부 연구팀도 이번 국내 논문을 일정 부분 뒷받침 하는 연구 결과를 내놓으면서 기대감은 더 커졌다.
중국의 창하이신 화중과학기술대 재료공학부 교수 연구팀은 2일 중국 동영상 플랫폼 ‘빌리빌리’에 초전도체 'LK-99' 합성에 성공해 마이스너(반자성) 효과를 검증했다고 주장했다.
마이스너 효과는 특정 물질이 적절한 온도에서 초전도 상태가 되고 자기장이 완전히 사라지는 현상이다.
다만 연구팀은 현재 반자성 현상만 재현하는 데 성공했으며 전기저항이 0인지에 대해서는 추가 실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앞서 시니드 그리핀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 박사 연구팀도 'LK-99'의 구조를 시뮬레이션 한 결과, 기존 초전도체보다 높은 온도에서 초전도성이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는 연구 결과를 31일(현지 시간) 아카이브에 공개했다.
연구팀은 다만 계산적으로는 가능해도 실제 실험을 통해 'LK-99'를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단서를 달았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대체로 성공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계산적으로는 가능해도 실제 실험을 통해 'LK-99'를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또 권 연구교수가 전체 연구진과 합의를 이루지 못한 상황에서 논문을 올렸다는 점을 들고 있다.
지난 1991년 과학논문 공개 사이트인 ‘아카이브’(arXiv)가 생기면서 검증 전이라도 공개해 연구 결과를 선점하겠다며 학술지 게재 전에 아카이브에 먼저 연구 결과를 올리는 연구자들이 늘기 시작했다.
권 연구교수도 “아카이브에 초전도 물질을 만드는 방법을 자세히 올려 검증을 받는 방식을 택했다”고 말했다.
국내 대표적인 초전도 연구자들의 학술단체인 한국초전도저온학회는 2일 “현 단계에서는 상온 초전도체로 보기 어렵다”며 "LK-99 검증위원회를 발족해 검증을 하겠다"고 밝혔다.
아카이브 논문과 공개된 영상을 볼 때 해당 물질이 상온 초전도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과학적 검증을 위해 이론적 검토와 실험을 진행하겠다는 것이다.
최경달 학회장(한국공학대 에너지전기공학과 교수)은 “만약 상온 초전도체라고 검증이 이뤄진다면 과학기술 분야에 매우 큰 영향을 주는 획기적 결과”라면서도 “학술검토를 거치치 않은채 공개돼 경제·사회적 영향을 끼친 점이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장 출신인 임춘택 광주과학기술원 에너지융합대학원 교수도 “기대가 너무 앞서간다는 생각이다. 설령 상온 초전도체가 개발된다고 해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초전도체는 전류가 일정 이상 흐르면 초전도성을 잃고, 초전도 도선도 직류에서는 저항이 제로이지만 교류나 맥류(변동 전류)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조셉슨 소자 등 초전도체, 양자소자의 상용화에 상온 초전도체가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면서도 “상온 초전도체가 핵융합발전, 전기비행기, 전기배의 상용화를 앞당기고 나아가 떠다니는 자동차, 공중도시를 구현할 수 있는 주장은 허무맹랑하다”고 주장했다.
랭거 디아스 미국 로체스터대 교수 연구팀은 2020년 국제학술지 ‘네이처’에 대기압 100만 배 압력에서 상온 초전도체를 개발했다고 발표했으나 재현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논문이 철회됐다.
디아스 교수는 올해 네이처에 다시 상온 초전도체 논문을 발표했으나 2021년 국제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낸 논문이 데이터 조작을 이유로 철회되면서 연구윤리 측면에서 의심을 받고 있다.
한편 상온 초전도체를 국내 연구진이 개발했다는 소식에 이날 초전도체 관련주가 일제히 강세를 나타냈다.
관련주인 서남은 전날에 이어 이날 개장하자마자 상한가로 직행하며 연중 최고치를 경신했다. 덕성(29.97%), 신성델타테크(29.75%)도 상한가를 찍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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