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반도체 굴기’가 성공했나?
리커창(李克强) 전 총리가 2021년 3월 양회((兩會·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과학기술육성에 “10년간 칼을 가는 심정으로 매진하겠다”고 밝힌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턱밑까지 따라온 것인가?
중국 최대 통신장비 기업인 화웨이가 깜짝 출시한 스마트폰 '메이트 60 프로'의 파장이 거세다.
미국의 반도체 제제로 고급 스마트폰을 만들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던 화웨이가 중국반도체 업체 SMIC(中芯國際·중신궈지)가 개발한 최신 반도체를 장착한 5G 스마트폰을 예정에 없이 내놓은 것이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이 중국을 방문한 시기에 보란듯이 신제품을 발표한 것이여서 "미국을 빰을 때리는" 시위 성격도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를 증거하듯, 중국 공산당의 입으로 불리는 관영 매체 글로벌타임스(중국명 환구시보)는 3일 사설을 통해 "지난 3년간의 침묵 이후 화웨이가 마침내 아이폰만큼 빠른, 최신 스마트폰을 출시했다"며 "이는 미중 기술 전쟁에서 중국이 결국 승리할 것임을 예고하는 쾌거"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승리까지는 몰라도 이쯤 되면 중국의 자체 반도체 개발이 속도를 내고 있다는 평가가 나올 수 밖에 없다. 중국이 다른 건 다 따라와도 반도체만은 아직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틀린 것인가 하는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기도 하다.
특히 화웨이의 메이트 60프로에 들어간 7 나노미터(㎚·1㎚=10억분의 1m) 반도체 공정은 인공지능과 각종 군사용으로 폭넓게 쓰일 수 있는 최첨단 기술이라, 중국 손에 들어가지 않게 틀어 막겠다고 미국이 공언해 온 터여서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중국 반도체 SMIC는 어떻게 이 기술 장벽을 단박에 뛰어넘은 것일까?
손에 잡히는 증거는 없지만, 몇가지 추론은 해볼 수는 있다.
1)SMIC가 7나노 공정에 필수적으로 알려진, 네덜란드 장비업체 ASML의 독점 생산 '극자외선(EUV)' 노광장비를 미국의 제재를 뚫고 확보했을 가능성이다.
여기에 2) SMIC의 7나노 공정이 TSMC가 만든 제품과 설계가 유사한 점을 들어 SMIC로 대거 이직한 TSMC 간부급 임원들이 TSMC의 7나노 공정 설계를 그대로 도용했을 가능성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우선 하나씩 찬찬히 따져보자. 경위야 어째됐든 SMIC가 7나노미터 공정 칩을 개발한 건 맞는 것 같다.
블룸버그와 로이터 통신은 4일(현지시간) 메이트 60프로를 해체해 분석한 결과, 중국 반도체 기업 SMIC가 개발한 7나노미터 공정 반도체가 사용된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도했다.
7나노미터 공정은 2018년 애플 아이폰 칩에 쓰인 기술이다. 아이폰은 현재 7나노보다 한참 앞서간 4나노 공정으로 제작된 칩으로 구동되며, 다음주에는 3나노 칩으로 구동되는 새로운 제품이 나온다.
이는 다시 말해 화웨이 스마트폰에 적용된 반도체 기술이 대만의 TSMC, 한국의 삼성전자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보다 4~5년 이상 뒤쳐졌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7나노 반도체의 자체 생산은 막중한 의미를 지닌다. 반도체 전문 분석기관 테크인사이츠(TechInsights)는 "중국 정부의 자국 내 반도체 생태계 구축 노력이 어느 정도 진전을 보이고 있음을 시사한다"고 평가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댄 허치슨 테크인사이츠 부회장은 "SMIC의 기술 발전이 가속화되고 있으며, 7나노 생산에서 수율에 영향을 미치는 문제들을 해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화웨이는 2020년부터 미국의 제재를 받아 해외 부품 공급업체로부터 5G칩을 구매하지 못하고 4G 칩만 구매할 수 있었다.
댄 허치슨 부회장은 이번 개발이 미국에 "뺨을 때리는 일"이라며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은 상황을 진정시키려고 왔는데, 이 칩은 '우리(중국)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봐라. 우리는 당신이 필요하지 않다'라고 말하고 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통신은 "중국의 부상을 억제하려는 미국의 시도를 우회하려는 국가적인 노력이 조기에 진전되고 있음을 보여준다"라고 평가했다.
이는 한마디로 미국의 대중 반도체 규제가 무용지물이 됐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미국은 지난해 7월 안보 우려 등을 이유로 18나노 이하 D램, 128단 이상 낸드플래시, 14나노 이하 시스템반도체 등 첨단 반도체 생산 등에 필요한 미국산 장비의 중국 수출을 금지했었다.
사실, 중국 SMIC의 7나노급 칩 생산에 성공한 것 같다는 소식은 지난해부터 블룸버그통신 보도로 불거져 나왔었다. 하지만 당시 국내외 반도체 전문가들은 “시험 생산과 양산은 다른 문제”라고 대수롭지 않게 반응했었다.
작년 7월 21일 블룸버그 통신 보도에 따르면, 캐나다의 반도체 정보업체 테크인사이츠를 인용해 중국의 비트코인 채굴 장비업체인 마이너바 반도체는 자사의 비트코인 채굴 시스템온칩(SoC)을 7나노 공정으로 생산했다.
마이너바는 해당 반도체 생산을 어느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기업에 맡겼는지는 공개하지 않았으나, 테크인사이츠는 제조업체가 SMIC라고 밝혔다.
이를 근거로 블룸버그는 SMIC가 반도체 공정 기술을 2세대 가량 더 발전시킨 것 같다고 관측했다.
세계 파운드리 시장을 5%(글로벌 5위) 점유, 중국 업체 가운데는 선두인 SMIC는 2020년 14나노급 공정을 상용화해 삼성전자와 대만 TSMC에 2세대, 4년 가량 뒤진 것으로 평가돼 왔다.
그러던 업체가 불과 2년만에 10나노를 뚫고, 다시 7나노로 2세대를 갑자기 치고 올라온 것이다. 공정 한 세대를 발전시키는데 빨라야 2년이 걸리는 점을 감안하면 반도체 공정 발전상 매우 보기 드문 일이 벌어진 셈이다.
실제 SMIC도 자사의 핵심 공정 기술이 14나노로 경쟁사들의 7나노보다 뒤떨어졌음을 인정하면서, 이르면 2020년에 14나노 이상의 발전된 기술을 출시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에 앞서 삼성전자와 TSMC가 2014년께 이미 14나노 생산에 돌입했고, 2020년에야 7나노 공정을 상용화한 점을 볼 때 SMIC의 추격 속도가 너무 빠른 것이다. 더욱이 SMIC는 2020년 트럼프 전 행정부 때부터 중국 인민해방군과의 관계를 이유로 제재를 받아온 상태였다.
무엇보다 7나노 미만 초미세 공정을 개발하려면 네덜란드 반도체 생산장비업체 ASML의 극자외선(EUV·Extreme ultraviolet) 노광 장비가 필수적이다. 물론 ASML은 미국의 압력으로 이 장비를 중국에 수출하지 않고 있다.
때문에 미국의 제재로 EUV 노광 장비의 중국 본토 반입이 금지된 가운데, SMIC가 7나노 벽을 뚫으면서 어떻게 공정 개발이 가능했는지 여려 관측이 나올 수 밖에 없다.
노광장비의 규제야 전세계에 수출된, 다양한 우회로를 거쳐 뚫었다고 해도, 7나도 공정은 초정밀 설계도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상황에서 TSMC가 만든 제품과 설계가 유사하다는 점 때문에 대만 기술의 중국 유출을 의심하는 견해가 나온다.
글로벌 반도체 리서치 전문 업체 테크인사이츠가 SMIC의 7나노 공정 반도체를 분석한 결과 3300W(와트)의 전력 소비와 초당 105TH/s(테라해시) 전송 속도 등이 TSMC의 7나노 공정 제품과 동일했다.
이를 근거로 SMIC가 TSMC의 7나노 공정을 그대로 가져다 사용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실제 TSMC는 2003년과 2009년 기술 유출을 이유로 SMIC를 두 차례 고소해 승소한 바 있어, 다소 시간 텀이 있지만 전혀 근거 없는 주장도 아니다.
SMIC와 힘을 합쳐, 첨단 휴대폰을 만들어낸 런정페이(79) 회웨이 회장이 지난 7월 회사 내부 담화에서 "우리는 달러가 아니라 인재를 비축하고 있다. 최종적으로는 우리의 인재풀(집단)을 비축할 것이다"라고 강조했다고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은 5일자로 보도했다. 그 인재풀에 중국 본토 안의 인재만 들어있을 것 같지는 않다.
물론 아직 중국 반도체 수준에 대해서는, 한국 등 선진국보다 4~5년은 뒤쳐져 있고, 첨단 공정을 대량생산할 정도까지는 아니라는 시각도 여전하다.
하지만 중국이 미국의 규제를 뚫고 첨단 기술을 확보한 걸로 확인이 되면, 미국은 더 강력한 규제와 감시의 칼날을 뽑아들 가능성이 높다. 그 유탄의 영향권에서 우리 반도체 기업들도 자유롭지 않다.
무엇보다 우리 반도체 기업들은 자체 기술 개발에 가속도를 높이는 중국에 한층 경계심을 갖고, 더욱 강력한 초격차 전략 추진과 함께 각성과 분발의 각오를 다져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저작권자 ⓒ 사이렌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