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로 여는 한 주③]“목소리들 가운데서…”... 막심 크리브소프

임지연 승인 2024.03.10 07:47 | 최종 수정 2024.03.10 09:26 의견 0

“목소리들 가운데서…”

막심 크리브소프 (Максим Кривцов, 1990~2024)

참호 속에서 쪽잠을 자고 있는 막심 크리브소프. 우크라이나의 촉망 받는 시인이자 군인이었던 그는 2024년 1월 7일 러시아군의 포탄 세례로 33세의 나이에 자신이 사랑하던 고양이와 함께 숨졌다.

(우크라이나어 원문)

Поміж голосу

і поміж мовчання

поруч із деревами й комахами

грізною чайкою металу.

Поміж

важкого мороку

і мертвого світла

у кислому молоці світанку

в лабіринті окопів

із Мінотавром вій ни.

Поміж обгорілих дерев

поміж розбитих

наче окуляри

що впали на землю

доріг

поміж привидів

мертвих

і живих.

Поміж тепла

яке йде від

зброї поміж

музики

кулеметних черг

поміж басів

заведеної техніки.

З’являється

наче ранковий туман

наче вугрі на щоках підлітка

наче зморшки

наче тріщини в старих будинках

наче стрілки на капронових

колготах:

Усмішка мовчання

спогади про втрачене тепло

вірш.

(한글 옮김 서린)

목소리들 가운데서

침묵 가운데서

나무와 벌레 곁에서

마치 위협적인 금속 갈매기처럼

무거운 어둠과

무력한 햇살

가운데서

새벽의 시큼한 우유 속에서

참호의 미로 속에서

전쟁의 미노타우로스와 더불어

시커멓게 타버린 나무들 틈에서

땅에 떨어진

안경처럼

박살 난

길들 속에서

죽은 영혼과 살아있는 영혼들

사이에서

무기에서 박동하는

온기 속에서

기관총의 연속적인 총성이 빚어내는

음악 속에서

작동하는 장비들의

저음 속에서

아침 안개처럼

십대의 얼굴에 돋아난 여드름처럼

주름살처럼

낡은 건물의 갈라진 틈처럼

나일론 스타킹에 난 구멍처럼

나타난다

침묵의 미소

잊혀진 온기를 떠올리는 추억

한 편의 시

해설: 서린

시는 영화 『동주』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린다.

윤동주 시인이 자신의 시집 제목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고 조선말로 밝히는 도중에 막이 내리며, ‘시’의 모음이 생략되고, 시옷이 숨을 내쉬는 소리, 아니 들이마시는 소리로 들린다.

러시아 군의 포탄 세례로 올해초 전사한 우크라이나 시인이자 군인 '막심 크리브소프'의 숨결이 마찬가지로 본 시의 마지막 구절에 뚜렷이 들린다. 꺼지지 않을 사람 소리가.

막심 크리브소프 (1990~2024)

고양이와 사진을 사랑했던 시인 막심 크리브소프


숲과 동물, 시와 사진, 인생의 다방면을 사랑했던 우크라이나 시인이자 군인.

우크라이나 서부도시 리브네에서 1990년 태어나 10대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한 그는 2013년 키이우 국립 기술 디자인 대학에서 '신발 & 가죽 제품 디자인'을 익혔다. 대학 졸업 후 반년간 직장생활을 하다가 당시 친러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을 반대하는 ‘유로마이단’ 시위에 가담했다.

2014년 러시아가 크림반도를 합병하고, 우크라이나 동부 돈바스 지역에서 전쟁을 일으키자, 자원 입대해 선임 기관총 사수로 복무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전면 침공이 시작되자, 재입대해 최전선 병사들의 일상을 평이하면서도 셈세하고 정갈한 시어로 표현해 SNS를 통해 많은 사랑을 받았다.

2023년 출간된 첫 시집 '전장에서의 시(Virshi z biinytsi)'에 우크라이나 문단의 뜨거운 찬사가 쏟아졌다.

2024년 1월 7일 자신이 사랑하는, 직접 시까지 지어 헌정한 그 고양이와 함께 포연 속에서 숨을 거뒀다. "우크라이나에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라는 평가 속에 전쟁 영웅으로 떠올랐고, 서구에서도 전쟁 시인으로 각별한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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