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노년④]"60평생 처음 사랑의 늪에 빠졌어요"...팬 활동이 활력소

임지연 승인 2024.04.03 09:54 | 최종 수정 2024.04.03 22:35 의견 0

“일본의 클래식 콘서트는 대부분 시니어 관객들로 북적이는데, 여기에 온 관객들은 커플이나 젊은층이 많네요."

최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해외 유명 성악가의 클래식 콘서트를 직관한 일본의 저출산 고령화 전문가 야마다 교수는 이렇게 촌평했다.

한일간 무엇이 다른 것일까? 일본의 젊은층이나 연인들이 클래식 공연장에 나오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번 찾은 콘서트장의 경험만으로 섣부른 판단을 할 수 없고, 시원한 대답 또한 찾을 수 없지만, 많은 생각이 드는 게 사실이다.

일단 논의의 편리함을 위해 클래식을 A급 문화의 전형으로, 대중문화 그 중에서도 트롯을 B급 문화의 전형(촌스럽고 허술한 스토리라인, 저예산, 코믹한 아류)으로 거칠게 분류해 보자.

물론 한때 저급하다고 치부되던 B급 문화는 요즘 대접이 완전히 달라졌다. 특히 트롯은 다양한 TV 프로그램의 등장과 함께 완성도 높은 무대와 스토리라인으로 더 재미있고, 더 친밀한 콘텐츠로 변신하면서 '대세'로 자리잡는 경향까지 생겼다.

어쨌든 핵심은 일본과 달리, 한국은 A급 문화와 B급 문화의 경계가 이제 뚜렷하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다. 양국의 공통점 못지 않게 차이점이 흥미롭다.

80세가 넘어서도 팬덤활동으로 일컬어지는 '강활', 일본명 오시카츠를 하는 시니어들이 많다. 노년층과 J리그 축구선수가 서로 돕는 'Be supporters!'의 모습.


나이를 잊은 오시카츠(팬덤)' 활동이 대세

일본에서는 최근 특정 인물이나 좋아하는 콘텐츠를 추천하는 '강활(推し活)', 일본어로 '오시카츠(존경하다, 추대하다는 “推”를 의미)'가 유행하고 있다.

한국어로는 응원활동, 팬활동 쯤으로 번역할 수 있는데, 한국어 '강추'에 응원한다의 의미를 더해진 정도로 보면 된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유행어를 만들 때 활동이라는 한자 ‘활活’을 붙여 합성명사를 사용한다. 예를 들면 슈카츠(취업 활동), 곤카츠(결혼 활동), 슈카쓰(종활: 인생 마무리 활동) 등이 있다.

일본에서는 오시카츠가 아이돌 팬이나 젊은 층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시간도 있고, 재력도 있는 팔팔한 액티브 시니어의 오시카츠가 더 큰 주목을 받고 있다.

같은 취향을 지닌 사람들끼리 만나, 강력한 결집력을 통해 외로움도 이겨낼 수 있고, 젊은 시절 못지 않은 열정도 되살려주는 오시카즈야말로 삶의 활력소가 되기 때문이다.

BTS의 팬클럽 'ARMY'의 일원인 일본 탤런트 아사키 쿠니코가 TV 프로그램에 BTS굿즈를 지참하고 나와 오시카츠(팬클럽 활동)를 홍보하고 있다.

“인생에서 처음으로 늪에 빠졌어요.”

BTS 광팬으로 주기적으로 팬모임에 나가서 정보도 교류하고 콘서트도 찾아가는 60대 액티브 시니어 A씨는 오시카츠를 하면서 자기도 모르게 소중한 존재감이 생겼다고 백한다.

일본의 프리마켓 웹사이트 '메르카리'(개인이 간단하게 물건을 사고팔 수 있음)이 2022년 9월 13일 경로의 날에 시니어의 오시카츠를 조사한 결과, 세대별 구매 카테고리에서 70대 1위는 K-POP이었다.

60대 이상에게 인기가 많은 K-POP그룹도 1위 'BTS'였고, 2위 'SEVENTEEZ', 3위 'ATEEZ'로 나타났다.

어쩌면 한국 시니어들도 한국식의 오시카츠의 늪에 빠져있는지 모르겠다. 최근 몇년간 대중 문화의 또다른 현상으로 자리잡고 있는 '트롯 열풍'을 받치고 있는 새로운 팬덤으로서 말이다.

한때 '뽕짝'으로 뿔린 트롯은 일본의 엥카를 따라한 음악 장르, 촌스러운 노래, 노인들만 듣는 음악, B급 문화이라는 이미지가 있었지만, 이제는 트롯의 사회학이라고 부를 정도로 새로운 음악으로 거듭났다.

한국에서는 요즘 트롯 티켓구매를 ‘피케팅’ (피 뛰기는 티켓팅)이라 할 만큼 웃돈을 지불하고도 구매를 원하는 오시카츠 팬들이 넘치는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 부는 '트롯 오시카츠' 바람

최근 일본에서도 K-POP이 인기를 끌면서 한국의 트롯도 주목을 받고 있다. 최근 ‘트롯 오디션’이라는 TV 프로그램 방영이 대히트를 치면서 중년부터 시니어까지 몰입하기 시작했다.

2000년대 겨울연가의 주인공 배용준을 '용사마'로 부르게 했던 한류 붐이 어느새 영웅이가 부르는 노래 ‘트로트가 뭐지’로 관심이 옮겨 붙더니, 이제 <트롯 오시카츠>에 눈을 뜬 사회현상이 나타났다.

이런 현상에 힘입어 한국의 한 종편TV가 일본위성방송 등과 손잡고 트롯 국가대항전을 펼치는 <한일가왕전> 프로그램까지 최근 선보이고 있다. 오시카츠 늪에 빠진 한일 액시브 시니어들끼리 어떤 교류가 일어날지 자못 기대된다.

'뉴스탤지어(신복고풍)' 취향을 겨냥한 실버비즈 인기

한국식으로 치면 추억의 다방에 해당하는 '코메다 커피점'. 깔끔하면서 소파도 푹신하고 값도 저렴해 편안한 이 곳은 시니어들에게 인기가 높다.


"적당함이 좋다."

경기가 안 좋을수록 기업들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마케팅을 펼친다. 일종의 신복고풍이라고 할 수 있는 '뉴스탤지어(New+Nostalgia)' 트렌드가 근래들어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한국으로 치면 '추억의 다방'에 해당하는 ‘코메다 커피점’이다. 1968년 일본 나고야에서 시작된 이 커피점이 근래 주목받은 건 단순하다.

한마디로 "너무 멋지지 않고, 서비스 비용도 과하지 않고, 모두 적당하고 편해서 좋다"는 것이다.

요즘 매장 입구마다 설치된 키오스크(자동주문기)는 찾아볼 수 없다. 푹신한 쇼파, 점원이 직접 테이블까지 와서 주문 및 서빙까지해주는 친절한 서비스, 파티션을 이용해 프라이버시를 중시한 공간이 특징이다.

그런 좋은(?) 의미에서의 평범함이 시니어들에게 일상적으로 이용하기 쉬운 안심감으로 이어진다는 호평이다

이곳에선 아침 6시부터 오전 11시까지 브랜드커피 주문시 간단한 아침식사까지 제공(달걀과 토스트)한다. 딱딱한 의자와 셀프 주문, 각박한 인테리어 공간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서양식 커피점에 지친 시니어들로선 과거의 추억을 느끼고 싶어 뉴스탤지어 카페를 찾아간다.

코메다 커피점에서 모닝세트로 하루를 시작하고, 틈나는대로 오시카츠를 즐기고 있는 시니어의 모습이다.

이 커피점은 큰 인기를 얻어 2021년 기준 911개의 점포가 생겼다. 대만의 타이베이, 홍콩에도 진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한일 양국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식양육에 올인하는 문화 때문에 정작 본인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준비하고, 어떤 자세로 맞이 해야 할지 막상 닥치면 두리번거리게 된다.

고민을 거듭하다가 은퇴 후에 또 다시 취준생이 되어 버리는 것이 우리 시니어들의 안타까운 현실이다.

<일과 인간관계> 분야 후회(아름다운 노년② 과거를 맘껏 후회하라참고)를 꼽으라 했더니, 1위가 ‘평생 즐길 수 있는 취미’를 못한 것이고, 희망사항이 뭐냐고 물었더니 젊은 시절에 못한 취미라도 맘껏 즐기며 열정과 성취감을 가지고 싶다고 대답한 것이 어쩌면 그 반증일 것이다.

오시카츠를 통해 사랑에 몰입하고, 뉴스탤지어를 통해 안온함을 갈구하는 시니어들의 모습은 한일 양국이 다름 없지 않을까?

일본의 저출산 고령화 문제를 연구, 한국에 적합한 대안을 찾고 있는 재일교포 출신 이명지 경희대 교수.


글: 니시야마 치나(한국명 이명지)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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