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1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한덕수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야당 주도로 본회의를 통과한 '해병대원 특검법안'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는 안건을 의결했다.
윤 대통령이 이를 재가하면 해병대원 특검법을 국회로 다시 돌려보내 재의결을 요구한다. 거부권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한 총리는 모두발언에서 "현재 경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이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며 "정부는 한 점 의혹 없이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고, 다시는 이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행정부는 입법부의 입법 권한을 최대한 존중해야 하지만 이번 법안은 의결 과정이나 특별검사의 추천 방식 등에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며 "국회의 입법이 우리 헌법이 정하고 있는 기본 원칙에 반한다면, (정부는) 헌법이 부여하고 있는 권한 내에서 의견을 개진할 책무가 있다"고 밝혔다.
앞서 더불어민주당·조국혁신당 등 야당은 지난 2일 국회 본회의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해병대원 특검법안을 가결했다.
법안 내용은 민주당이 고른 2명 중 1명을 특별검사로 임명하고, 특검에게는 특별검사보 3명, 특별수사관 40명을 임명할 수 있게 했다. 검찰·경찰에서도 40명을 파견 받을 수 있다.
특검은 채 상병 사망 사건과 관련해 ▲대통령실, 국방부, 해병대사령부, 경북지방경찰청의 은폐, 무마, 회유 등 직무유기 및 직권남용과 이와 관련된 불법행위 ▲수사 과정에서 인지된 관련 사건 등을 수사하도록 했다.
이 외 수사 대상에는 채 상병 사망 사건을 처음 조사 및 처리한 군사경찰과 군검찰단, 군법무관도 사건 관계자로 포함됐다.
정부는 이에 대해 헌법상 행정부의 권한을 빼앗는 법안이 행정부·여당과의 합의 없이 야당 단독으로 처리돼 삼권분립에 어긋난다는 입장이다.
한 총리는 "이번 특검법안은 야당 단독으로 강행 처리됐다. 특검 후보 추천권을 야당에 독점적으로 부여해 대통령 인사권을 침해하고 삼권분립에 위배될 소지가 크다”고 부연했다. 또 "경찰과 공수처에서 수사 중인 사안이고, 이은 검찰의 추가 수사가 개시되기도 전에 특검을 도입해 특검 제도의 ‘보충성·예외성 원칙’에도 어긋난다”고 했다.
정부는 민주당이 앞서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과 대통령실 관계자를 '채 상병 사망 사건에 외압을 가해 사건을 축소하려 한 의혹이 있다'며 공수처에 고발해놓고, 별도로 특검을 만들어 같은 사건을 수사하게 한 것도 문제가 있다고 했다. 현행 사법 시스템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국회는 '해병대원 특검법안'이 돌아오면 본회의를 열어 법안을 다시 표결에 부칠 수 있다.
재표결에서 특검법안이 재적 의원 과반수 출석과 출석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가결되면 대통령은 법안을 다시 거부할 수 없고 법률로 공포해야 한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21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는 29일까지 법안을 표결에 부치지 않으면 법안은 자동 폐기된다. 하지만 22대 국회의원 임기가 시작되면 야당이 같은 법안을 다시 낼 수 있다. 현재 국민의힘에서는 안철수·김웅 의원이 이 특검법안에 찬성표를 던지겠다고 밝힌 상태다.
한편 민주당은 이날 "스스로 정치적 무덤을 팠다"며 총력 대응을 시사했다.
■다음은 한 총리의 관련 발언 전문이다.
한덕수 국무총리 지난해 여름, 군 복무 중인 우리의 젊은 해병이 작전 수행 중에 안타깝게 목숨을 잃는 일이 있었습니다. 너무나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서 다시 한번 순직한 채 해병의 명복을 빌며, 소중한 아들을 잃으신 채 해병의 부모님과 가족 분들께 깊은 위로의 말씀을 전합니다.
정부는 한 점 의혹 없이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고, 다시는 이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이러한 입장은 사건 발생 직후부터 일관되게 말씀드린 바 있으며, 지금 관계 기관에서 진행 중에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5월 2일 국회는 이번 사건의 원인 규명을 특검으로 넘기는 내용의 ‘순직 해병 수사 방해 및 사건 은폐 등의 진상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임명 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을 야당 단독으로 의결한 바 있습니다. 행정부는 입법부의 입법 권한을 최대한 존중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번 특검법안은 의결 과정이나 특별검사의 추천 방식 등 내용적인 측면에서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습니다. 국정 운영에 책임이 있는 정부로서 국회의 입법권이 우리 헌법이 정하고 있는 기본 원칙에 반한다면 헌법이 부여하고 있는 권한 내에서 의견을 개진할 책무가 있습니다.
특별검사는 헌법상 행정부의 권한인 수사권과 소추권을 입법부의 의사에 따라 특별검사에 부여하는 제도라는 점에서, 우리 헌정사에서 항상 여야 합의 또는 정부의 수용을 전제로 도입되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특검법안은 절차적으로 야당 단독으로 강행 처리하였고, 내용적으로 특별검사 후보 추천권을 야당에게 독점적으로 부여함으로써 대통령의 인사권을 침해하고 헌법상 삼권분립에 위배될 소지가 큽니다.
또한, 경찰과 공수처에서 수사 중인 사안에 대해 검찰의 추가 수사가 개시되기도 전에 특별검사를 도입하여, 특별검사 제도의 ‘보충성․예외성 원칙’에도 어긋납니다.
수사 대상을 고발한 야당이 수사 기관‧대상․범위를 스스로 정하도록 규정한 대목도 깊이 우려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수사와 재판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보장하는 현행 사법 시스템의 기본 원칙을 훼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이 밖에도, 본 법안은 편향적으로 임명된 특별검사가 실시간으로 언론 브리핑을 할 수 있다는 점과 수사 대상에 비해 과도한 수사 인력이 편성되는 등 여러 측면에서 문제점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점을 감안하여, 오늘 국무회의에서는 국무위원들과 함께 본 법안에 대한 국회 재논의를 요구하는 안건을 심의하고, 그 결과를 대통령께 건의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국민 여러분, 정부는 채 해병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여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는 일에 결코 소홀함이 없도록 최선을 다할 것임을 다시 한번 약속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