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20년간 미제 사건으로 남아있던 서울 양천구 ‘신정동 연쇄살인 사건’의 진범을 찾았지만 이미 10년 전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관들이 전국을 돌며 사망자 DNA까지 확보한 성과였지만 헛수고가 돼 버렸다. 경찰은 아쉽게도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될 예정이다.
서울시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는 21일 브리핑을 열고 신정동 연쇄살인 사건의 피의자를 신정동 한 빌딩관리인으로 근무했던 전 모 씨로 특정했다고 밝혔다.
2005년 6월 서울 신정동 연쇄살인 사건 발생 당시 현장.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
앞서 지난 2005년 6월과 11월 양천구 신정동 주택가 골목에서 20대 여성과 40대 여성이 5개월 간격으로 변사체로 발견됐다.
숨진 두 여성은 모두 목이 졸려 숨졌고 머리에 검은 비닐봉지를 씌운 채 쌀 포대나 돗자리에 끈으로 묶여 있었다.
2005년 6월 범행 당시 인근 초등학교에서 포대와 노끈으로 결박된 채 발견된 A 씨의 시신.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단 형사기동대
경찰은 전담수사팀을 꾸리고 8년간 수사를 했지만 피의자를 특정하지 못해 2013년 미제 사건으로 분류했다.
재수사는 2016년 서울경찰청이 미제사건 전담팀을 만들면서 시작됐다.
경찰은 우선 두 사건 피해자의 시신에서 모래가 발견된 점에 집중했다.
2005년 서남권 공사 현장 관계자, 신정동 전·출입자 등 23만여 명을 수사 대상자로 선정하고 전국을 돌아다니며 1514명의 유전자를 채취한 뒤 대조했다.
범인이 조선족일 수도 있다는 판단에 중국 국가 데이터베이스와 대조하는 등 국제공조 수사까지 벌였다.
이런 노력에도 일치하는 DNA를 발견하지 못했다.
이후 경찰은 이미 사망한 자로 대상을 확대해 사건과 관련성 있는 56명을 후보군에 올린 뒤 대조에 나섰다.
드디어 범행 당시 신정동의 한 빌딩에서 관리인으로 근무한 전 씨를 유력 용의자로 특정했다.
하지만 전 씨의 시신은 2015년 사망 후 화장 처리돼 유골 확보가 불가능했다.
경찰의 집요한 수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전 씨가 생전 살았던 경기 남부권 병·의원 등 40곳을 탐문 수사하고 이 중 한 병원에서 보관하고 있던 전 씨의 검체를 확보하는 성과를 거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의뢰한 감정 결과에서도 ‘범인과 일치’로 나왔다.
또 전 씨가 2차 살인 사건 발생 3개월 후인 2006년 2월에도 같은 장소에서 성범죄를 시도하다가 현행범으로 체포돼 2009년까지 수감됐던 것으로 조사됐다.
전 씨는 이들 범행 당시 60대 초반이었지만 180㎝의 키에 단단한 체격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군 복무 시절엔 수사 부서에 있었고, 성범죄 전력을 포함해 여러 건의 전과가 있었다.
경찰은 전 씨가 이미 사망해 공소권 없음으로 사건을 종결하기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살인범은 저승까지 추적한다’는 각오로 범인의 생사와 관계없이 장기 미제 사건을 끝까지 규명하겠다”고 말했다.
신정동 연쇄살인 사건은 한 방송을 통해 ‘엽기토끼 사건’으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경찰은 당시 전 씨가 교도소에 수감돼 있었던 점을 근거로 “관련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