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로 여는 한 주⑦]'임상병력'...마리아 페렌추호바

임지연 승인 2024.04.15 03:03 | 최종 수정 2024.04.15 04:28 의견 0

임상병력

마리아 페렌추호바(Mária Ferenčuhová, 1975~)

현대 슬로바키아 문단의 핵심 시인으로 꼽히는 마리아 페렌추호바(Mária Ferenčuhová).


(슬로바키아어 원문)

Anamnéza

Otec zomrel v 37 rokoch na chorobu srdca,
matka žije, syn zdravý, anamnéza
z psychiatrického hľadiska
bezvýznamná.
Bežné detské choroby,
nelieči sa, lieky neberie,
pred siedmimi rokmi operácia brucha:
vnútorné zranenie po bodnutí nožom.
V slobodnom povolaní. Inak čašníčka.
Žije sama, t. č. na ubytovni, fajčí 10 cigariet denne,
pije 2-3 litre vína za týždeň.
Na svitaní ju susedka našla
na balkóne polonahú
vyklonenú cez zábradlie.
Kričala, že konečne nastal čas.
Je pri vedomí,
kontaktná,
dezorientovaná,
používa vulgarizmy.
Po 14 dňoch hospitalizácie
stabilizovaná, nálada prejasnená,
výborne odpovedá na liečbu.
Dnes ráno prepustená
do ambulantnej
starostlivosti.

(한글 옮김 서린)

임상병력

아버지는 서른 일곱에 심장병으로 돌아가셨다,

어머니는 살아 계신다, 아들은 건강하다,

정신병력은

미미하다.

흔한 아동기 질병에 걸렸었다,

지금은 치료나 처방은 받지 않는다,

7년 전 위장수술을 받았다,

자상으로 생긴 내상 때문에.

프리랜서로 일한다, 종업원으로도.

혼자 산다, 여관에서, 하루 담배는 10 개피 핀다,

일주일에 포도주를 서너병 마신다.

새벽에 동네사람이 발견했다

발코니에서. 옷이 반쯤 벗겨진 채

난간 너머로 몸을 구부리며

드디어 때가 왔다 소리지르고 있었다.

그녀는 의식이 있다,

소통할 수 있다,

혼란스러워한다,

욕질한다.

입원한지 열나흘 뒤

안정됐다, 기분이 풀어졌다,

약을 먹으며 부쩍 좋아졌다.

오늘 아침 풀려났다

통원

치료로.

해설: 서린

시 해설을 맡은 서린 씨는 한국 외국어대에서 폴란드 문학(박사과정)을 전공하고 있지만, 동구권 이웃 나라인 슬로바키아의 문학에도 관심이 많다.


옷이 반쯤 벗겨진 채 여성은 절규했고, 약을 먹게 되며 침묵 속에 가라앉는다.

하지만 여백에서, 행간에서 그녀의 울부짖음이 계속 메아리 친다.

드디어 때가 왔다고. 침묵을 지키면서, 담배 10 개피를 피우면서 더 참지 않을 것이라고.

마리아 페렌추호바(1975~)

마리아 페렌추호바는 현대 슬로바키아 문단에서 영향력 있는 시인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브라티슬라바 공연 예술 아카데미에서 영화 역사와 다큐멘터리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현재까지 출간된 시집 네 권은 실존적 불안과 변함없는 일상, 동반자와 부모 자식 사이, 그리고 만연한 질병과 위기에 빠진 환경을 격식 없이, 여과 없이 투영한다.

저작권자 ⓒ 사이렌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