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로 여는 한 주①] '타인의 아름다움에서만'...아담 자가예프스키

임지연 승인 2024.02.25 21:28 | 최종 수정 2024.03.03 07:59 의견 0

시(詩)를 읽는 코너를 새롭게 마련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서구에서는 유명한 동유럽과 미국의 명시들을 주로 소개할 예정입니다.

SNS와 숏폼으로 대표되는 디지털 시대에 뜬금 없이 왠 시냐구요?

가볍고, 즉자적이고, 시각적인 자극에만 열광하는 시대, 특히 인간보다 시를 더 잘 쓴다는 생성 인공지능(AI)이 날로 발전하고 있다는 시대에 시가 독자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하냐구요?

물론 회의적입니다.

그럼에도 시 읽기를 포기할 수 없는 건, 가벼움과 효율성의 깃발만 나브끼는 시대에 묵직한 사유와 느림의 미학을 통해 우리 자신의 내면 풍경을 비추어 보는 시라는 거울이 필요하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영국 시인 T.S.엘리어트가 '사상의 정서적 등가물(等價物)'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듯이 시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를 더 깊이 이해하고 서로의 내밀한 감정을 공유하며, 인간적 경험을 나누는 언어의 금자탑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독자들과 시를 읽기로 했습니다.

우리의 시, 동양의 시도 좋지만, 전혀 다른 토양과 문화 속에서 길러진, 그들만의 고유한 사유가 펼쳐진 서양의 시를 소개하기로 했습니다.

부친의 미국 유학 중 1982년 태어난 한국계 미국인으로, 젊은 시절 30년 가까이 미국에서 보내고 다시 폴란드로 건너가, 9년간 시를 연구한 한국 외국어대학교 동유럽어문학과 박사과정 서린 씨가 매주 한 편의 시를 선정, 간결한 해석을 곁들여 시의 참맛을 보여드릴 예정입니다.

시인이자 폴란드 문학을 전공하는 서린씨


틈나는 대로 시를 쓰는 시인이기도 한 서린 씨는 2011년부터 2019년까지 폴란드 크라쿠프에 거주하며 폴란드의 현대 시인들을 만나 그들의 작품을 영어로 번역했고, 문학지 『유령』(WIDMA)의 편집장으로도 일한 재사(才士)입니다.

다름과 차이, 다양성과 복잡성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유럽과 미국의 시가 보여주는 상상과 사유의 신세계, 그 새로운 감성의 높이를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편집자주

타인의 아름다움에서만

아담 자가예프스키(Adam Zagajewski,1945~2021)

폴란드 출신 저명 시인 아담 자가예프스키(1945~2021)


폴란드어 원본

W cudzym pięknie

Tylko w cudzym pięknie

jest pocieszenie, w cudzej

muzyce i w obcych wierszach.

Tylko u innych jest zbawienie,

choćby samotność smakowała jak

opium. Nie są piekłem inni,

jeśli ujrzeć ich rano, kiedy

czyste mają czoło, umyte przez sny.

Dlatego długo myślę jakiego

użyć słowa, on czy ty. Każde on

jest zdradą jakiegoś ty, lecz

za to w cudzym wierszu wiernie

czeka chłodna rozmowa.

한글 번역 (최성은, 이지원 옮김)

타인의 아름다움에서만

타인의 아름다움에서만

위안이 있다, 타인의

음악에서만, 타인의 시에서만.

타인들에게만 구원이 있다.

고독이 아편처럼 달콤하다 해도,

타인들은 지옥이 아니다,

꿈으로 깨끗이 씻긴 아침

그들의 이마를 바라보면.

나는 왜 어떤 단어를 쓸지 고민하는 것일까,

너라고 할지, 그라고 할지,

모든 그는 어떤 너의 배신자일 뿐인데, 그러나 그대신

서늘한 대화가 충실히 기다리고 있는 건

타인의 시에서뿐이다.

시 해설:서린

'타인은 지옥이다'라고 한 프랑스 실존주의자 장 폴 사르트르와는 달리, 폴란드 시인 아담 자가예프스키는 '타인들에게만 구원이 있다'고 말한다.

아무리 타인들이 우리를 괴롭히고 좌절하게 해도, 결국 그들로 인해서만 구원 받을 수 있다.

아니, 그들인 너로만으로 인해 내가 내 안으로 침잠하지 않는다.

아담 자가예프스키(1945~2021)

세계적으로 주목 받은 폴란드 시인. 자신의 작품을 통해 역사의 비극적인 사건들과 인류의 위대한 정점을 그렸고,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일생에 대해 고찰했다.

9.11 테러 사건 이후에 그의 「상처 입은 세상을 찬미하려 노력하라」는 시가 『더 뉴요커』(The New Yorker)에 실린 뒤 미국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고, 이후 노벨문학상 후보로 수차례 이름을 올리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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