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로 여는 한 주②]'이력서 쓰기'...비스와바 쉼보르스카

임지연 승인 2024.03.03 08:14 | 최종 수정 2024.03.03 12:42 의견 0

이력서 쓰기

비스와바 쉼보르스카(Wisława Szymborska, 1923~2012)

폴란드의 대표 국민시인이며 1996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폴란드어 원문)

Pisanie życiorysu

Co trzeba?
Trzeba napisać podanie,
a do podania dołączyć życiorys.
Bez względu na długość życia
życiorys powinien być krótki.
Obowiązuje zwięzłość i selekcja faktów.
Zamiana krajobrazów na adresy
i chwiejnych wspomnień w nieruchome daty.
Z wszystkich miłości starczy ślubna,
a z dzieci tylko urodzone.
Ważniejsze, kto cię zna, niż kogo znasz.
Podróże tylko jeśli zagraniczne.
Przynależność do czego, ale nie dlaczego.
Odznaczenia bez za co.
Pisz tak, jakbyś z sobą nigdy nie rozmawiał
i omijał z daleka.
Pomiń milczeniem psy, koty i ptaki,
pamiątkowe rupiecie, przyjaciół i sny.
Raczej cena niż wartość
i tytuł niż treść.
Raczej już numer butów, niż dokąd on idzie,
ten za kogo uchodzisz.
Do tego fotografia z odsłoniętym uchem.
Liczy się jego kształt, nie to, co słychać.
Co słychać?
Łomot maszyn, które mielą papier.

(한글 옮김 최성은, 『끝과 시작(문학과지성사)』)

이력서 쓰기

무엇이 필요한가?
신청서를 쓰고,
이력서를 첨부해야지.

살아온 세월에 상관없이
이력서는 짧아야 하는 법.
간결함과 적절한 경력 발췌는 이력서의 의무 조항.
풍경은 주소로 대체하고,
불완전한 기억은 확고한 날짜로 탈바꿈시킬 것.
결혼으로 맺어진 경우만 사랑으로 취급하고
그 안에서 태어난 아이만 자식으로 인정할 것.
네가 누구를 아느냐보다, 누가 널 아느냐가 더 중요한 법.
여행은 오직 해외여행만 기입할 것.
가입 동기는 생략하고, 무슨 협회 소속인지만 적을 것.
업적은 제외하고, 표창 받은 사실만 기록할 것.
이렇게 쓰는 거야. 마치 자기 자신과 단 한번도 대화한 적 없고,
언제나 한 발자국 떨어져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해왔던 것처럼.
개와 고양이, 새, 추억의 기념품들, 친구,
그리고 꿈에 대해서는 조용히 입을 다물어야지.
가치보다는 가격이,
내용보다는 제목이 더 중요하고,
네가 행세하는 '너'라는 사람이
어디로 가느냐보다
네 신발의 치수가 더 중요한 법이야.
게다가 한쪽 귀가 잘 보이도록 찍은 선명한 증명사진은 필수.
그 귀에 무슨 소리가 들리느냐보다는
귀 모양이 어떻게 생겼는지가 더 중요하지.
그런데 이게 무슨 소리?
이런, 서류 분쇄기가 덜그럭거리는 소리잖아.

해설: 서린

시 해설을 맡은 서린 씨. 폴란드 문학을 전공하는 그는 한국의 현대시를 번역, 유럽에 알리는 작업에도 열정을 쏟고 있다.

이력서를 준비할 때와 마찬가지로 시인의 프로필을 작성하는 것 또한 추리고 줄이고
생략하는 작업이다.

위키백과에 나와있는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짤막한 프로필을 예로 들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는 점에 주목하며, 그가 청소기 사용 설명서를 위대한 문학
작품처럼 즐겨 읽었다는 사실, 혹은 알아보기 힘든 글씨체로 썼다는 사실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그리고 시 해설자의 이력서나 프로필에서도 그의 신분과 경력만을 강조하며,
폴란드에서 데려온 고양이 두 마리에게 폴란드어뿐 아니라, 한국말로도 ‘사랑해!’를 알아듣게 끔 훈련시켰다는 성취(착각?)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는다.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1923~2012)

1996년 스웨덴 한림원은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발표하면서 시인의 작품은 "모차르트 음악같이 잘 다듬어진 구조에, 베토벤의 음악처럼 냉철한 사유 속에서 뜨겁게 폭발하는 그 무엇을 겸비했다"고 상찬했다.

그의 작품 세계는 모차르트의 유머처럼 희극과 비극 사이를 매끄럽게 넘나들며, 베토벤의 열정처럼 임마누엘 칸트가 말한 내면의 도덕법칙을 지키면서 별이 빛나는 하늘을 갈망한다.

평범하고 일상적인 것에서 건져 올린, 삶의 지혜가 번득이는, 명징한 시어는 세계적으로 많은 독자들을 매료시켜 왔다. 한국외국어대학교 폴란드어과 최성은 교수가 번역한 그의 시선집 『끝과 시작』과 『충분하다』 등으로 한국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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