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송도에서 발생한 사제총기 살인 사건 당시 관할 경찰서 지휘관(상황관리관)이 70분 넘게 현장에 출동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상황관리관은 현장에 출동해야 하는 내부 매뉴얼조차 모르고 있었고, 경찰 특공대가 진입한 뒤에야 현장에 도착한 것으로 드러났다.
26일 경찰 등에 따르면 사건 신고가 112에 처음 접수된 것은 지난 20일 오후 9시 31분이다. 당시 아버지의 총격에 쓰러진 A(33·사망) 씨의 부인은 자녀들을 데리고 다급하게 방 안으로 대피하면서 "남편이 총을 맞았다. 살려달라"고 신고했다.
20일 밤 인천 송도 사제총기 아들 살해 아파트 단지에 출동한 경찰 순찰차와 119구급대 모습. 독자 제공
신고를 접수한 경찰관은 총기 범죄임을 인지하고 최단 시간 출동 지령인 '코드0'(매뉴얼 중 위급사항 최고 단계)을 발령했다.
이후 10여분 만에 순찰차 3대가 차례대로 현장에 도착했으나 정작 일선 경찰관들을 지휘해야 할 상황관리관인 B 경정은 현장에 오지 않았다.
경찰 내부 매뉴얼상 코드0 발령 시 상황관리관은 초동대응팀과 함께 현장에 출동해 지휘관 역할을 수행하다가 주무과장이 도착하면 지휘권을 이양해야 한다.
상황관리관이 출동하지 못하면 초동대응 팀원 중 선임자를 팀장으로 지정해야 하지만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았다.
지난 20일 사제 총기로 아들을 살해한 사건이 난 인천 연수구 송도동의 한 아파트 현관 앞에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다. 독자 제공
이에 초동대응팀은 피의자 C(62) 씨가 집 안에 있다고 판단하고 그를 자극할 경우 가족들이 위험에 처할 수 있다는 이유로 경찰 특공대가 올 때까지 시간을 보냈다.
특공대는 오후 10시 16분 현장에 도착했고 오후 10시 40분 내부에 진입했으나 C 씨는 이미 달아난 뒤였다.
B 경정은 10시 43분 이후 현장에 도착했다.
A씨의 집 도어록은 C 씨의 총격으로 파손돼 개방할 수 있었으나 경찰은 특공대 진입 전까지 문을 열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다.
경찰은 신고 접수 1시간 47분 만인 오후 11시 18분에야 A 씨가 도주한 사실을 CCTV로 확인했다.
도주 사실을 일찍 파악했다면 총을 맞은 피해자를 더 빨리 구조할 수 있었을 것이란 아쉬움이 남는 대목이다.
관할 경찰서는 "신고자인 A 씨의 아내와 계속 통화했으나 C씨가 내부에 있는 거 같다고 해 쉽게 진입하지 못했다"며 "현장 직원들이 테라스를 통해 내부를 살펴보는 등 노력을 했다"고 말했다.
B 경정은 현장에 늦게 도착한 건 사실이지만 경찰서 내에서 최대한 현장 경찰관들을 지휘하려고 노력했다는 입장이다.
B 경정은 "당시 상황실에 4명이 있었는데 무전을 총괄하는 직원이 다 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 무전을 대신 받고 내부망으로 전파했다"며 "인터넷에서 집 내부 구조를 확인하기 위한 시도도 했다"고 해명했다.
또 출동 매뉴얼을 어겼다는 지적에 대해선 "매뉴얼을 숙지하지 못했던 게 사실"이라고 답했다.
그는 "도착 후 33층으로 올라갔으나 증거물을 더럽히면 안 된다고 해 집 안에 들어가진 않았다"고 했다.
경찰의 초동 대처를 두고 논란이 불거지자 경찰청 감찰담당관실은 이날 인천 사제 총기 사건 관련 진상조사에 착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