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노년⑤]'노노(老老)간병'의 비극...평생활약, 세대통합 시설로 넘는다

임지연 승인 2024.04.14 07:23 | 최종 수정 2024.04.14 17:32 의견 0

웰에이징(wellaging)이 우리의 목표이다.

하지만 특히 건강만큼은 우리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

지난주 일본에서 들려온, 참담한 뉴스를 접했다. 치매를 앓던 90대 노모와 60대의 두 딸이 잇따라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장례를 잘 부탁한다는 메시지를 남긴 두 딸은 이른바 ‘노노(老老)간병’ 끝에 스스로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것이다.

올해 초에도 비슷한 이유로 역시 치매를 앓던 80대 아버지와 함께 50대 아들이 삶을 포기했다.

일본복지대학 유하라 교수의 조사에 따르면 노노간병의 비극은 2012~2021년 10년간 적어도 총 437건(사망자 443명)에 달해 8일에 한 번꼴로 일어나고 있다.

내년이면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한국도 길어지는 간병에 따른 정신적 고통과 경제적 압박으로 ‘노노간병’ 문제가 불거질 위험성이 높아지고 있다.

2006년 초고령사회(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의 비율이 20% 초과)에 진입한 일본은 요양을 책임질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해당 가족은 물론이고 NPO(Non-Profit Organization, 비영리기구로 주로 사회문화적 목적을 위해 만든 민간단체), 지역의 봉사조직까지 총동원하였지만 한계가 뚜렷했다.

이에 일본정부는 일종의 은퇴자 주거 복합 단지로, 고령자가 건강한 시기에 그들을 위한 시설에 입주해 지속적인 케어를 받으며 평생 지낼 수 있는 커뮤니티를 뜻하는 미국의 CCRC(Continuing Care Retirement Community)를 본따 일본형 CCRC를 구상했다.

이른바 ‘생애(평생)활약마을’로 불리는 정책이다.

하루라도 더 건강할 때 지방으로 이주해 평생학습과 사회활동을 시작하고, 건강이 악화되더라도 그곳에서 간병을 받으면서 계속 생활할 수 있게 하자는 의도였다.

70세 나이에 도쿄에서 차로 2시간 거리의 도치기현 고령자용 주택 ‘유이마루 나스’로 이주, 6년 동안 글을 쓰면서 새로운 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 히사다 메구미 씨.


몇 년 전 필자는 강원대학교에서 일본 CCRC의 사례 연구로 고령자용 주택 '유이마루 나스'에 대해 발표한 적이 있는데, 마침 최근에 그곳에서 지내는 작가 히사다 메구미 씨 소식을 들었다.

히사다 씨는 일본 고령화 저출산 전문가 야마다 교수의 지인으로 70세에 도쿄에서 차로 2시간 남짓 거리(도쿄 우에노역에서 신칸센으로는 1시간 거리)에 있는 도치기현의 ‘유이마루 나스’로 이주했다. 그 곳에서 자신만의 속도로 글을 쓰고 새로운 공동체 활동에 참가하면서 6년 동안 지내고 있다.

나스 마을의 웅장한 자연에 둘러싸인 '유이마루 나스'는 각종 서비스가 포함된 고령자용 주택이다. 혼자 사는 편안함과 자유, 그리고 동시에 함께 사는 즐거움이 있는 장소라는 「생애활약마을」의 모델로 주목 받고 있고, 또한 가장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혼자 사는 편리함과 함께 사는 즐거움을 두루 누릴수 있게 설계된 일본의 고령자용 주택 '유이마루 나스'의 모습.


삼나무로 만든 멋진 목조 건물에서 생활하면서 도서관, 음악실, 자유공간에서 여러 문화 활동과 함께 일도 할 수 있다. 지역에서 생산된 재료로 만든 건강한 식단을 즐기면서 공동 버스로 이동의 편리함도 누릴 수 있는 게 나스 마을의 매력이다.

일본의 지방은 저출산에 따른 만성적인 인력 부족으로 인해 중장년층의 일손이 필요한 실정이다. 은퇴 후 지방으로 이주해서 단지(일본어로 サ高住(사고주), 아파트나 맨션과 같은 다세대 주택을 지칭)에서 강의를 하거나(강의료는 식권으로 대체), 인근에 마음대로 농원을 만들어서 수확해 적당한 요금을 산정해 상자에 담아가는 등 유유자적한 생활을 한다고 한다.

나스 지역은 2차 대전 후 일자리를 잃은 직업 군인과 만주 귀국자들이 개척해 풍요로운 땅으로 키운 곳으로 개척자 정신이 남아 있어,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는 사람을 응원해 주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이러한 지역 특성과 여러 곳에서 모인 시니어들의 만남을 만든 유이마루 나스는 건강할 때 지방 생활을 즐길 수 있는 대표적인 시니어 주택이다.

'유이마루 나스' 가운데 야미조 삼나무로 지어진 단독주택풍의 주거지.

한편 치매로 인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세대 통합형 요양원 '아오이케어'가 있다.

2011년 도쿄에서 멀지 않은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에 한 민간인이 설립한 이 곳은 ‘치매 고령자 그룹 홈’과 짧은 기간 동안 거주할 수 있는 ‘개방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개방 공간이 아오이케어의 장점으로 꼽힌다.

'치매 대응형 공동생활 돌봄'으로 일컬어지는 그룹홈의 경우 치매 환자가 입주할 수 있는 시설로, 공용 공간과 나만의 개인실로 이루어져 있다.

아오이케어는 지금까지의 「노인이 가는 시설」 아닌, 「노인이 주역인 시설」로 제2의 우리 집을 표방한다. 시설 입주자들이 아오이케어에서 어린이들과 함께 즐기는 모습.


가정적인 환경에서 일상 생활을 간병인이 도우면서 치매의 진행을 완화시키고, 끝까지 생활하는 것을 목표로 성공한 요양원이기도 하다.

치매가 세상과의 고립이 아닌 지역사회와 상생할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의도한 것으로 시설 입주민들은 지역 주민과 어울리면서 직접 만든 물품을 판매하기도 한다.

치매 케어 및 주민과 교류하는 시설 운영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가나가와현 후지사와시의 간병사업 '아오이케어'. 대표이사인 가토 다다스게씨(49)가 기존의 간병시설에 의문을 가지고, 2011년 새롭게 혁신적인 요양원을 시작했다. 사진은 2층에 자유공간과 카페가 있는 소규모 다기능형 주택 돌봄 시설.

치매를 앓고 있는 가족 구성원이 있으면 모든 케어를 담당하는 것 역시 가족이다. 이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물론 치매 환자를 위한 시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직 그 시설에 대한 신뢰성이 부족하거나 제도적으로 미비한 측면이 있기에 간병은 대부분 가족의 몫으로 귀결되고, 결국 비극적 결말을 불러오기도 한다.

이러한 시설들을 이미 준비한 일본에서도 노노간병 사건이 점점 늘어가는 점도 현실이다.

아오이케어에는 담장이 없다. 지역의 아동, 학생, 직장인, 노인들도 자연스럽게 오솔길을 오가게 되어 있어, 시설 이용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도 잦아진다.


그렇다면 늦게 준비를 시작한 한국은 노노간병에 따른 가족들의 괴로움으로 인해 불행한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확률은 더 높을 수 있다.

저출산 정책 못지 않게 시급한 게 고령화 대책이다. 시니어를 위한 신뢰할 수 있는 공간 '유이마루 나스', 치매를 함께 하는 지역 세대 통합형 요양원 '아오이케어' 같은 일본의 시설 못지 않은, 아니 그보다 더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한국형이 성공적으로 출현 한다면 가족 행복이 곧 사회 행복이 아닐까?

글: 니시야마 치나(한국명 이명지) 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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