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C통신 '나우누리' 만든 강창훈 전 나우콤 사장 별세
나우콤 창업해 ‘나우누리’ 선보여
1만 4400bps, 한글ID 허용 파격
정기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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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7.18 19:44 | 최종 수정 2023.07.18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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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이 본격화 전인 지난 1994년 PC통신 ‘나우누리’를 선보인 강창훈 전 나우콤 사장이 지난 17일 경남 진주제일병원에서 뇌졸중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 66세.
고인은 ‘천리안’, ‘하이텔’과 함께 국내 3대 PC통신 서비스였던 나우누리를 탄생시켰다.
고인은 부산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한 뒤 선경건설 해외사업부와 연합통신(현 연합뉴스)에 입사했다. 당시 연합통신은 AP다우존스와 국제금융정보 단말기 공급 계약을 한 뒤 영어에 능통한 사원을 뽑았다. 이어 1990년 초창기 PC통신 '케텔(Ketel)'을 운영하던 한국경제신문 뉴미디어국으로 옮겼다.
한경과 한국통신이 1991년 한국PC통신을 설립해 ‘하이텔’을 선보일 때 정보개발부장·영업부장 등을 맡아 서비스 정착에 기여했다.
하지만 한국통신 출신 인사들이 중용되며 갈등이 빚어지자 고인은 후배들과 회사를 떠나 1994년 4월 나우콤을 창업하고 새 PC통신 나우누리를 선보였다.
나우누리는 1만 4400bps 속도(기존 PC통신 서비스는 2400~9600bps)에 한글 ID(아이디)를 허용하는 등 혁신적인 시도로 하이텔, 천리안과 함께 ‘PC통신 3강’으로 키웠다.
당시 나우콤 직원 중에 학생운동권 출신이 많았고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 등이 이용하는 것으로 알려지며 ‘운동권 PC통신’으로 불렸다.
나우누리는 PC통신 가운데 처음으로 ‘연합통신 속보’를 제공했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와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고 소식 등을 PC통신을 통해 실시간으로 전했고, 1997년 11월에는 이인제·권영길 후보를 초청해 대선토론회를 여는 등 사실상 언론 역할을 시도했다.
아이네트 인터넷 서비스인 ‘한누리’를 PC통신을 통해 제공하는 등 인터넷 시대 개막에도 기여했다.
하지만 초고속인터넷 보급에 따른 인터넷이란 새로운 거대 흐름을 타지는 못하면서 PC통신 이용 수요가 감소해 나우누리 서비스도 2013년 1월 31일 종료됐다. 나우콤은 아프리카TV의 전신이기도 하다.
고인은 2000년 초 나우콤 사장에서 물러났고 이후 제주와 대전 등에서 사업과 봉사활동을 해왔다.
아들 강유민 씨는 “5년 전쯤 여동생이 있는 진주로 내려가 살았고 뇌졸중으로 투병했다”고 전했다.
나우콤씨앤씨(C&C) 팀장을 지낸 김철균 도산아카데미 원장은 “초기 PC통신이 통신사 주도의 ‘통제된 마인드’의 서비스였다면, 고인은 나우누리가 언론 역할을 하도록 방향을 틀었다”며 “술을 워낙 좋아하고, 발상이 자유로운 분이었다”고 회고했다.
나우콤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지낸 이재철 컴투티비 대표는 “IT 초창기에 짧고, 강하고, 뜨겁게 살다 가신 분”이라며 “PC통신에 풀뿌리·네티즌 민주주의 개념을 도입했다”고 기억했다.
유족은 부인 이금이 씨, 아들 강유민·강다민 씨, 동생 강지훈·강경희 씨가 있다. 빈소는 진주제일병원 장례식장 203호실. 발인은 19일 오전 7시, 장지 진주시안락공원. 055-750-7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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