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29일 올해보다 55조 원 가까이 늘어난 728조 원의 새해 본예산안을 편성, 발표했다.

본예산 기준으로 처음 700조 원 시대가 열렸다. 지난 2022년 600조 원을 넘어선 뒤 불과 4년 만이다.

윤석열 정부의 긴축재정을 버리고 확장재정으로 유턴했다.

AI(인공지능) 대전환과 국가 R&D(연구개발) 확대 등 성장 동력 예산과 함께 24조원 규모 지역사랑상품권(지역화폐) 발행 국비 지원 예산 등이 담겼다.

지출 확대하면서 국가부채는 1년 새 무려 140조 원 늘어 중장기 재정 운용에 비상등이 켜졌다.

정부는 이날 국무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의 2026년 예산안을 의결, 9월 3일 국회에 제출한다고 밝혔다.

구윤철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29일 2026년 예산안 및 2025~2029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브리핑하고 있다. 기재부

총지출 규모는 728조 원으로 올해 본예산(673조3000억 원) 대비 8.1%(54조 7000억원) 늘어났다. 증가율은 코로나19 팬데믹 대응으로 8.9% 불어난 2022년 이후 4년 만에 최고다. 증가액은 2005년 공식 통계 집계 이후 최대다.

기획재정부는 "1.9%인 잠재 성장률(물가 자극 없이 달성할 수 있는 최대 성장률)을 3%로 끌어올리기 위해 AI와 방위산업, 신재생에너지 등 미래 산업에 재정 투입을 늘리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분야별로 인공지능(AI)에 투자를 크게 확대한다.

자동차·조선 등 제조업과 AI를 접목한 피지컬 AI를 중심으로 관련 예산을 올해 3조 3000억 원에서 내년 10조 1000억 원으로 늘렸다.

대표적으로 바이오헬스, 주택·물류 등 생활밀접형 제품 300개의 AI 적용을 지원하는 ‘AX-스프린트 300’ 사업을 신설하고 9000억원을 투입한다.

인프라 차원에선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 확보에 2조 원 이상을 투입한다.

R&D 예산도 역대 최대 수준인 19.3% 증가한 35조 3000억 원으로 편성했다.

우선 ‘A(인공지능)·B(바이오)·C(콘텐츠)·D(방산)·E(에너지)·F(제조)’ 첨단산업 분야별 핵심 기술개발에 10조 6000억 원을 투자한다.

병사 월급이 급격히 오르면서 역차별 논란이 있던 초급간부의 처우 문제도 해결한다. 5년 미만 초급간부 보수를 최대 6.6% 인상하고, 각종 수당을 현실화한다.

수도권과 지방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지방 재정을 보강했다.

지방이 여건에 맞게 자율적으로 편성하는 포괄보조금 규모를 올해 3조 8000억 원에서 내년 10조 6000억 원으로 대폭 확대한다.

선심성 돈 풀기 예산 논란이 있는 지역화폐와 기본소득 등 현금 지원 사업도 이번 예산안에 담겼다.

전국 지자체가 24조 원어치 지역화폐를 발행할 수 있도록 역대 최대인 1조 1500억원의 정부 예산을 투입하기로 했다.

또 아동수당 등 7개 주요 재정 사업에 인구 감소나 지역 낙후도를 반영해 우대하는 원칙도 시범적으로 도입한다.

비수도권 167개 시군구를 특별·우대·일반지역으로 나눠 지원을 차등하는 방식이다.

저출생 해소를 위해 만 7세 이하에게만 주던 1명 당 10만 원의 아동수당을 만 8세에게도 지급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5000억 원 이상의 예산을 추가로 투입한다.

인구 감소세가 심한 지역 주민들에게 월 15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는 농어촌 기본소득 시범 사업도 내년에 첫발을 뗀다.

지역전략산업과 연계해 국가거점 국립대를 지원하는 예산도 5000억 원 증액했다.

분야별로는 보건·복지·고용 부문의 예산이 가장 많이 늘었다. 올해보다 20조 4000억 원 증가한다.

기준중위소득(각종 복지 지원을 할 때 기준이 되는 전 국민 소득의 중간값)을 높여 생계급여와 주거급여를 인상한다.

의료급여의 경우 부양의무자가 소득 중 일부를 수급자에게 생활비로 지원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부양비 제도를 폐지해 환자 가족의 부담을 줄인다.

다음으로는 일반·지방행정 10조 4000억 원, R&D 5조 7000억 원, 국방 5조 원 등이다.

기재부는 미국 관세 부과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1조 9000억 원의 예산을 편성해 한국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이 참여하는 정책금융 패키지 지원책을 마련할 계획이다.

화석연료를 태양광·풍력 등 신재생에너지로 전환하기 위한 융자·보조 규모도 올해 5000억 원에서 내년 9000억 원으로 확대한다.

국회와 대통령실의 세종 이전을 위한 설계 비용 등도 내년 예산안에 포함됐다.

하지만 기재부는 국세 수입 등 내년 총수입이 올해 651조 6000억 원 대비 22조 6000억원(3.5%) 늘어난 674조 2000억 원으로 올해 대비 3.5% 늘어나는 데 그칠 것으로 전망했다.

총지출은 올해 673조 3000억 원보다 54조 7000억원(8.1%) 증가한 728조 원으로 확정했다.

이에 따라 총지출이 총수입을 웃돌아 53조 8000억 원의 통합재정수지 적자가 발생한다.

국민연금 등 사회보장성 기금 흑자분을 제외한 실질적인 나라 살림 상태를 보여주는 관리재정수지는 109조 원 적자다.

연간 나라 살림이 100조 원 이상 구멍이 나는 건 유례 없는 일이다.

이런 적자 살림을 메우려 적자성 국채 발행을 늘리면서 올해 말 1300조 원을 넘어설 것으로 전망되는 국가채무가 내년 말에는 1400조 원대로 불어난다.

구체적으로 내년 말 국가채무는 1415조 2000억원으로 올해보다 141조 8000억 원(본예산 기준 증가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51.6%로 사상 처음 50%대에 진입한다.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주요 국과 비교해 아직 낮지만 문제는 속도다.

지난 5월 국제결제은행(BIS)의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24년(9월 말 기준)까지 한국의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9%에서 45.3%로 5배로 증가했다.

같은 기간 미국은 51.1%에서 107.4%로 2.1배로 늘었다. 기축통화국(국제 시장에서 널리 쓰이는 통화를 보유한 국가) 미국보다 부채 증가 속도가 빠르다.

한편 한국의 국가채무는 2009년 359조 6000억 원에서 2019년 723조 2000억 원으로 10년 만에 약 두 배로 커졌다.

이어 7년 만에 다시 두 배 수준인 1400조 원대에 진입했다.

문제는 부채 규모가 커졌는데도 증가 속도는 더 빨라졌다. 올해 국고채 이자로 나가는 돈만 30조 원이 넘는다.

내년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4.0%로 올해(4.2%)에 이어 2년 연속 4%를 넘어선다.

정부의 재정 준칙인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규모를 3% 이내로 유지한다는 것도 무너졌다.

문제는 정부가 이날 예산안과 함께 발표한 2025~2029년 국가재정운용계획엔 재정 건전성을 개선할 방안은 담기지 않았다. 재정 적자를 당연시하는 분위기도 깔려 있다.

전망대로라면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29년 58%까지 늘어난다. 나랏빚은 결국 미래세대의 부담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