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인도에 '추억의 엿장수'가 나타났습니다.
한 어르신이 허름한 리어카 엿판에 얹어놓은 덩어리 엿을 자르는 모습인데, 옛 생각이 나 얼른 폰을 눌렀습니다.
엿장수와 엿은 중년 이상 분들에겐 가장 상징적인 어린 시절 추억물입니다. 어릴 때 다디단 엿이 먹고 싶어 엿판 주위를 맴돌거나 졸졸 따라다니던 기억은 잊혀지지 않는 추억으로 남아있지요. 당시로선 최고의 주전부리였습니다.
지난 24일 오후 서울 강서구 공항대로 뒷 도로가에서 찍었습니다. 불황기의 한 단면이지만 독자분들도 어린 시절 엿장수 추억을 되새김질해 보시길.
어르신이 허름한 리어카 위에 엿판을 올려놓고 엿을 자르고 있다.
잠시 타임머신을 타고 길가에, 마을에 엿장수가 많았던 1970~1980년 시절로 돌아가보겠습니다.
엿장수는 보통 리어카에 엿판을 싣고 다녔습니다. 이전엔 엿판을 목에 걸고서 파는 행상도 있었지요. 단원 김홍도의 그림 '씨름'에도 씨름판 옆에 목에 엿판을 건 어린 엿장수가 나옵니다.
엿장수는 먼저 만들어 온 가락 엿을 팔기도 하고 덩어리 엿을 통째 싣고 나와 쇠주걱과 같은 정(엿칼)으로 잘라 주었습니다.
가락 엿은 놀이로도 애용됐습니다. 가락 엿을 딱 부러뜨려 구멍이 작은 엿을 산 이가 엿값을 내곤 했습니다.
하지만 엿장수의 추억은 덩어리 엿을 사먹던 게 더 와닿습니다.
엿장수의 두 손엔 가위와 납작한 엿칼이 들려있었지요.
망치로 엿칼을 엿 위에다 놓고 툭툭 두드려 엿을 잘랐지만 엿가위로 탁탁 쳐 자르기도 했습니다. 엿을 먹기좋게 한입 크기의 작은 조각으로 쪼갭니다. "찰거락~찰거락", "쨍거락~ 쨍거락" 하는 소리가 매우 경쾌합니다. 지금도 매력적인 추억의 소리로 귓전을 울리는 듯합니다.
엿장수는 간혹 검은 갱엿을 갖고 나와 대패로 긁어서 팔기도 했습니다.
엿장수의 상징 도구인 엿가위는 엿을 자르기도 했지만, 독특한 소리로 행인들 발길을 잡는 역할이 주입니다.
엿장수는 엿가위의 둔탁한 날과 헐렁한 조임쇠를 활용해 날을 찰싹(철썩)거리며 놀려 흥겨운 소리를 내지요. 일종의 엿가위 춤인데, 현란한 손기술을 선보입니다. 예전, 마을을 돌던 크림 장수 등은 북을 쳐서 사람을 모았지만 엿장수는 엿가위 하나로 노래를 부르며 관심을 끌었습니다.
엿장수 어르신이 망치로 날렵한 정을 비껴치며 자치ㅇ '울릉도 호박엿'을 자르고 있다. 엿판 위에 커다란 엿가위가 있다. 계좌이체도 가능하는 문구도 이채롭게 다가선다.
엿장수 어르신이 엿 자르는 삼매경에 빠져 있는 가운데, 학교를 파하고 버스를 기다리던 여학생들이 좀처럼 구경하기 어려운 엿판을 보며 신기한 듯 바라보고 있다. 이상 정기홍 기자
옛시절 이야기를 다시 하면, 마을 아이들은 엿장수 가윗소리에 놀이를 멈추고, 엿이 먹고 싶어 엿판 옆에 바짝 붙어서 침을 질질 흘립니다. 이어 집안 구석에 쳐박혀 있던 떨어진 고무신, 찌그러진 냄비, 깨어진 술병 등을 들고 나옵니다. 검정고무신보다 흰고무신을 더 쳐주었습니다.
주머니에 돈이 없던 시절입니다.
대구의 한 엿장수는 1960년 말~1970년대 열린 전국엿가위경연대회에서 '쌍가위 장단'으로 최우수상을 탄 뒤 유명해져, CF도 찍고 종로의 술집 밤무대까지 진출해 큰 돈을 벌었다는 기사도 있더군요.
요즘엔 전국 축제장에서 각설이타령 등으로 축제 분위기를 돋웁니다.
행인을 불러모으는 엿가위와 엿을 자르는 납작한 정. 요즘은 민속품으로 인터넷에서 중고품으로 판다. 이 엿기구는 5만 6천 원에 나와 있다. 11번가
엿가위와 쥐는 법을 연출한 모습. 녹이 쓴 이 엿가위는 4만 원에 나왔다. 6080 추억상회
■엿단쇠소리
엿단쇠소리는 엿장수들이 흥을 돋우기 위해 부르는 노랫가락이다. '엿 파는 소리' 혹은 '엿단쇠소리'이라고 한다.
강원도 금강산/일만하고도 이 천봉/달(돌) 많아 구암자/십 구세야 나는 우리 딸이 만들어준/ 울릉도라 호박엿/둥기둥기 찹쌀엿/떡 벌어졌구나 나발엿/허리가 잘 쑥 장구 엿/올곳볼곳 대추 엿/네모야 반듯 수침 엿/어어 떡 벌어졌다 나발엿/이것저것 떨어진 것/운동화 백 켤레 밑 떨어진 것도 좋고/신랑 각시 첫날밤에/오줌 누다가 요강 빵꾸난 것도 쓴다/에헤 좋구 좋다.